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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청년 Mar 04. 2018

지구를 구할 때만 용기가 필요한건 아니다.


제 부산 지하철 1호선에서 본 일,

고개를 들고 있지 않아서 어제 내가 지하철에서 마주친 광경은 좀 드물다.


아빠, 엄마, 아들이 나란히 지하철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맞은 편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이사람 저사람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역에서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타셨다.

앉을 자리가 없었고, 그 부부는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서 계셨다.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어머니께서 입모양과 눈빛과 손짓으로 아들에게

'할머니께서 다리가 불편하시니 너가 자리를 양보하자' 라고 말씀 하셨다.

(조금 멀리서 일어나고 있던 일이고, 내 귀에 이어폰 때문에 말은 정확히 들을 수 없었다. )

아들이 머슥하게 일어났다.

아들은 내키지 않았다기 보다는 쑥스러워 보였다.

할머니께서 등을 돌리고 계셔서 할머니를 부르든 어깨를 톡톡쳐서

자신을 바라 보게 해야 하는 일이 가장 먼저였는데

수줍움 많은 아들에게 그게 가장 어려워 보였다.

일어나긴 했는데 한참을 주춤되더니 고개를 돌려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턱을 위아래로 까딱까딱 움직이셨다.

'얼른 이 일을 끝내라. 아들' 이란 뜻이다.


아들이 고개를 돌려 할머니 쪽으로 10센티 더 움직였다.

나는 속으로 힘내라..청년...응원했다.


다행히 같이 서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다가오던 아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 아들은 빈 자리를 수줍게 가리켰다.

그제서야 할머니께서도  돌아보셨고, 또 그 수줍은 청년은 빈 자리를 가리켰다.

'알고, 귀여워.'

할머니는 다리를 절뚝 거리시며 걸어와서 그 자리에 앉으셨다.

아들에게도 엄마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나는 그들만 보였다. 참 신기하지.

좋은 일을 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한참을 머뭇거리는구나.

용기가 필요하구나. 착한 일을 행할 때도.

좋은 일 앞에서 마음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구나.

그동안 살면서 곤경에 처한 나를 보면서

도와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도와 주는 게 수줍어 아무것도 못해 준 사람들을

나는 쉽게 나쁜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으면 어쩌지?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너는 안 일어나고 뭐했니?'라고 생각하는 분 계시겠지요.

이렇게 좋은 일은 오늘 저보다 더 젋은 청년들에게 양보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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