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슬리퍼의 기억...
비가 오는 날이라 삼선 슬리퍼가 눈에 많이 띄네요.
그러면서 안 좋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삼선슬리퍼,
미올의 현대생활백서 중
여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안 신는 슬리퍼
남자는 대학교, 대학원에 이어 집에서 주구장창 신는 것...
대학교 3학년 시절,
그 때는 정말 공부 외에는 관심이 없던 저는
전공 과목 수업이 야간에 보충이 있었습니다.
실험실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그 날도 어김없이 수업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교탁 바로 앞에 턱 하고 자릴 잡고 앉았습니다.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오는 저녁 이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피는데 과에서 제일 키가 큰 언니가 성난 얼굴로 제 앞에 서더니
"야~너는 교수님 바로 앞에 앉으면서 슬리퍼가 가당키나 하냐? 앞으로 그러지마."
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뭐라 그랬을까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다시 피던 책 마자 펴서 수업에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전 그 얘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쭈욱 슬리퍼를 신고 수업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학문에 심취한 나머지 그 언니 얘기가 귀담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제 생애를 통틀어 공부에 미쳐있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시기였으니깐요.
그리고 그 다음 그 언니께서 지적질 할 때 꼬락서니 입니다.
여름이였습니다. 언니께서 앞 뒤 다 뚫려 시원한 끈으로 된 예쁜 구두 같은 걸 신고 계셨거든요.
그리고 맨 발에 매니큐어까지 발라 계시더군요.
전 비록 삼선 슬리퍼였지만, 양말은 신고 있었습니다.
자. 누구 꼬락써니가 더 무례할까요?
저는 지금도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무례했지요..
그런데 선배께서는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채 저만 나무라시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저를 시기, 질투하신 것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였지만(그 당시엔 이 생각조차 못했음),
그래도 누군가를 지적하고 싶다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군, 너나 잘하세요.'
그러니, 함부로 누군가에게 지적질 하지 마세요.
지적하는 니 꼴이 더 웃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