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파서 칼로 깎아 호두 오일을 발라 내 손으로 만든 첫 나무 숟가락
나무로 뭘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루 종일 쓰잘 데기 없는 생각을 안하고
(메리다, 넌 누구냐? 뭐 좋아하냐? 지금 행복하니? 뭘 포기할 수 있어?)
멍하니 그저 손이든 몸이든 쓰고 싶어서 카빙 수업을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나무 도막과 칼, 연장만 들고 오직 한 생각만 했다.
'깎기만 하는거야. 조심해. 손가락 다쳐. '
낯선 공간이 주는 낯가림이 나는 무척 심하다.
그래서 배우는 걸 좋아하는 거에 비해 해 본 게 별로 없다.
오늘 작정하고
굳이 낯선 공간에 적응하려 하지 않고,
그 낯섬을 그냥 둔 채, 내가 깎고 다듬어야 하는 나무에만 집중했다.
공간이 주는 낮섬을 피하기 위해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해지려고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질문들을 해대던 과거의 나를 오늘의 나로 막았다.
그렇게 무심하게
입 다물고 나답게 실제로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나무만 깎았더니 목만 아프다.
집에 돌아와서 나무질 내내 더워서 공방에서 뒷목이랑 겨드랑이에 땀이 차서 불편했는데도
예전처럼 온 몸의 에너지를 낯선 공간에 다 빨린 기운이 들지 않았다.
저녁도 먹고, 글도 쓰고, 씻고, 책도 볼 수 있었다.
나무토막은 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분이 10퍼센트 정도 있단다. 양지에 두면 뒤틀린다고 하셨다.
나무토막에 미세한 구멍들이 많았는데
그게 살아 있을 때 물이랑 공기가 왔다 갔다 하던 통로란다.
그 부분이 단단하다고 하셨다.
결을 따라 파면 칼끝이 결에 꽂히기 때문에
결 반대로 칼질 해야한다.
케틀벨 졸업했는데 다시 금정구다. 참 멀다. 아주 멀다. 정말 멀다.
모모스 커피를 다시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숟가락에서 호두 냄새가 난다. 고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