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과정마다 한 번씩 겪는 일
학위과정마다 한 번씩 겪는 일이라고 표현을 해서 웃기기는 하지만, 실제로 석사 과정 중에 한 명과 절교를 했고 이번에는 떼로 절교를 했다. 이유는 민감함의 정도가 달라서였다.
민감함의 정도가 다르다고 하면 대개 '민감성 수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또 민감성 수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고 말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기 떄문이다. 민감성 수치가 조금 더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어휘라면, 이번 내 상황은 그렇지 않다.
양쪽 다 수가 틀려서 심한 말을 했겠다. 나는 어디, 감히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연령대가 나보다 어리다는 것을 은연중에 늘 생각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그쪽에서는 더 한 말을 가지고 나왔다.
"정신병 화풀이 대상으로 보지 마라."
<안녕? 질병코드 F313>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실제로 나는 양극성정동장애를 앓고 있다. 내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호르몬이 이럴 뿐이고, 나는 그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을 정상수치로 되돌리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양극성 정동장애는 귀찮은게 많아서, 6개월에 한 번 운전면허 교육을 별도로 받아야 하고 보험 가입도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그냥 감내해야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너 정신병자라서 그렇게 예민한거야. 그래서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보는 거야'라는 말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나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것을 소위 말하는 아침드라마처럼 뿌려서 약간의 스크래치라도 가게 하는 게 좋을까?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데, 주변의 친한 지인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합격 소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한(?) 나쁜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주변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나도 마음을 잘 먹어야 하니까.
석사과정 중에도 그렇고 박사과정 중에도 그렇고, 이상하게 과정 초기에 나는 조금 강도가 있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면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너희만큼은 나를 가만히 뒀으면"하는 희망을 갖는다. 그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대화를 할 때 조금 더 둥글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반대쪽에서 깨면 나는, 나 역시 가차없이 깨 버린다. 더는 지킬 선이 없기 때문이다. 지켜야할 선은 이상하게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자꾸 움직인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절교를 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학위논문청구의 질의자로 가게 됐다. 석사 학위 논문이라면 부담이 덜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더 부담이 된다. 사실 두근거리는 건 나아진지 얼마 안 됐다. 그래도 질의지를 전송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학위 과정 중인데 기혼자가 아니라면, 누가 뭐래도 공부가 1순위일 것이다. 사실 돈이 1순위일 것 같지만 돈은 공부를 하고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냥 많이 벌면 좋고, 적게 벌면 화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은 생긴다. 나는 지나치게 일 중심적으로 사고가 돌아가고, 감정도 거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면 몇 년씩 봐왔다면 적어도 '네가 정신병자라서 그래'라는 말 정도는 가려서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신병은 있지만, 정신병자라고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나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