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과 절대는 없다
대학원 수업을 듣다보면, 각자의 전공에서뿐만 아니라 전공 내에서도 특기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던 석사 시절을 돌이켜보면, 논문의 빈 틈을 찾아내는 것을 잘하는 편이었다. 반면 같이 공부하던 언니는 한문 해석을 잘 했는데, 특유의 어투를 살려내는 데 강자였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어느 정도는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대학원 내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버린다. 이미 교수님들과 많은 선배들이 있기 떄문이다. 하지만 동기 중에서도 단연 내가 최고가 되어야겠다거나, 한 수업에서만큼은 내가 두각을 드러내겠다는 욕심도 버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업이 굉장히 힘들어지고, 다른 사람을 시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예를 본 적이 있다. 동기이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이 먼저 석사 학위 논문 발표를 했다고 손윗 사람이 되는 동기가 화장실에서 우는 사건이 있었다. 발표자는 얼마나 황당했겠으며, 주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그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했겠는가. 그 기저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아마도 시기심이나 질투, 욕심이라는 선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수필을 제출하고 오는 길인데, 수필 제출을 하면서 한번만 더 퇴고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지 5일만에 그만뒀다. 아무리해도 전문가들의 수필 영역과 내가 쓴 글의 영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타협이다.
사실 나는 절대 영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조건 되는 것이 있으면, 또 안 되는 건 없다. 절대 영역 안에서는 그런데, 이번 과제를 하다보니 절대 영역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마음 먹으면 무조건 해내야 한다. 말을 그래서 쉽게 하지 않는데, 말을 했다 하면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불편하게 살고 있다. 사실 이것 때문에 불편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수필 과제를 시작하면서였으니 고작 일주일도 안 된 셈이다.
방송인 박나래 씨가 오은영 박사님을 보자마자 "나래씨, 낯을 가리네요?"라는 말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는 장면이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적 있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오은영 박사님을 한 번은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나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뭘까. 나는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었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장애물은 낯가림보다는 절대 영역, 완벽함이다. 완벽해야하고, 절대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역에서 나는 단연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욕심이 나를 끊임없이 피곤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 은사님께서 나보고 '반드시', '꼭', '무조건'은 사람 살면서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학부 은사님의 말을 되짚으며 에세이 과제를 하고 나니, 비로소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조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