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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임경 Oct 08. 2023

스트레스 푸는 법 찾기

F313 양극성 정동 장애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 이야기 

최근 들어서 쉬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일을 벌이는 편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정도를 모르고 자꾸 달려들 때가 있어서 더 그렇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중간이 없이 사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중간 없이 그냥 막 달리는 삶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그래서 더 대학원 체질이라는 말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가끔은 쉬어야 한다는 신호가 올 때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발부터 다리까지 저려올 때가 있다. <안녕 질병코드 F313> 에서 쓴 적도 있지만, 나의 MMPI 진단 결과를 보면 나는 무엇인가를 참을 때 신체적으로 증상이 발현되는 편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과제를 퇴고하다가 갑자기 다리가 저리면 약을 먹거나 해야한다는 것이다.


쉬어야 한다는 신호가 올 때

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마저도 없어졌다. 박사를 새로이 입학하면서부터는 사실 마음이 급하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무엇인가를 하게 된다. 미리 과제를 해두고, 남은 시간에는 다음 과제를 한다. 그리고 과제가 끝나면 퇴고를 하고, 퇴고를 마치고나면 논문을 읽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이상적인 것 같은데, 계산을 해보면 8시간도 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최근 고양이 화장실을 치워준지 좀 된 것 같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부모님이 도와주고는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생활의 영역이 거의 줄어든 상태이다. 논문 학기라면 내가 나를 이해라도 할텐데 지금은 논문 학기는 커녕 첫 학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활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록해두었다가 고스란히 병원에 가져가야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석사 과정에 비하면 지금은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다. 매주 소논문을 써서 발표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매주 읽어야 하는 책이 서너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험이 매 시간 있지도 않다. 거기에 우리집 고양이는 내가 석사 논문 최종 퇴고를 할 때 왔는데 그때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청소기까지 돌릴 정도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상태는 굉장히 무기력하거나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날 때

그래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다. 물을 마시려고 식탁 앞에 섰다가 기운이 빠져서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막 나기 시작한다. 소리 내서 우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주르륵 흐르기 시작하면 엄마가 몇 가지 처방을 해준다. 고기를 구워주거나 - 지난 밤에는 항정살을 먹었다 -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라고 한다.


샤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하거나, 배스밤을 풀어놓고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에게 욕조에 앉아서 20~30분을 보내라는 것은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다. 빨리빨리 무언가를 해결해야 가슴에서 답답한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냥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튼 간밤에는 항정살을 구워서 먹었다. 배가 부르고 나니까 조금 나아지는 것도 있고, 사실 내가 힘든 걸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풀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게임을 할 시간도 없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계속 돈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 공부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병원에서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기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공부에 회피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한다. 방어기제 중에서 극과 극의 수준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대학교 1학년 때 공부를 하겠다고 했더니 심리학과 교수님이 나를 두고 "자세한 상담은 전문가에게 가서 하는 게 좋겠지만, 내가 봤을 때 너는 아무래도 공부는 도망치는 구실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니까 어른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날 때면 그래서 이렇게 하나씩 생각해본다. 



스트레스 푸는 법

그러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 전에는 돈을 썼다. 사실 얼마전에도 한성 무접점 키보드를 사서 그것을 지금 쓰고 있는데 정말 좋다. 글 쓰시는 분들은 꼭 이거 사세요(?) 아무튼, 최근에는 돈을 쓰는 것마저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어서 새로운 스트레스 풀 거리를 찾는 중이다. 게임을 했었는데 게임 할 기력도 없어졌고, 마음이 영 편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를 만나보기로 했다. 친구와 같이 고궁에 가서 가을이니까 바람도 쏘이고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긴 대학원 생활을 위해서는 스트레스 푸는 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과연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대학원 생활의 모토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보기>이다. 나만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대학원 생활을 하되,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선을 지키기. 너무 많은 것을 도우면서 하지 않기. 적당히 거리두기. 이런 몇 가지들을 요약하면 저렇게 되는 것 같다. 개인주의적으로 살기보다는 이기적으로 살기라고 생각해야 마음가짐이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학기 나만의 과제는 그래서 스트레스 푸는 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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