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글로, 내 회고록으로 회고하기
나의 조울증 증상이 어느정도 회피성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원 일기로 이제 하나씩 기록해볼까 한다.
이번 추석때 주어진 과제는 총 3개로, 쪼개면 다시 다섯 개가 된다.
사실 소설 창작 마감은 10월 30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정도 완성된 것을 제출해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추석 떄 초고를 마련해야한다고 볼 수 있다. 진짜로 나온 과제는 아웃트라인짜기이다. 아웃트라인 짜기에는 인물 배치, 줄거리, 그리고 그외 시놉시스에 들어갈만한 것들이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줄글로 몇 글자 써놓고,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뒀다가 그 설정이 소설에 반영되면 포스트잇을 버리곤 한다. 논문을 쓰면서 들었던 버릇이 소설 쓰기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쪼가리로 소설을 썼다. 그런데 이번에 본격적인 아웃트라인 작성이 과제로 나온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 구상은 되어 있었으나, 전체 줄거리를 써야 하고 그에 따른 세부 항목들을 쓰다보니 써둔 초고와 다른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면 나는 고민하게 된다. 줄거리를 다시 바꿀 것인가, 아니면 쓰다보니 바뀌게 되었다고 할 것인가.
원래 같으면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후자를 선택한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에 "절대"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로 지킬 때가 왔다. 그래서 나는 아웃트라인을 작성한 글을 읽으면서 비문이 있는지, 맥락상 맞는지만을 확인하기로 했다.
창작 과제를 비롯해서 논문 과제도 만만치 않다. 내가 논문을 선정하고 보니,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작품이더라.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이 선정한 작품 중에서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내가 논문 작품으로 선정한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말로 '처음 보는 것'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줄거리 요약부터 해야 한다.
그러고나면 논문을 내가 썼다고 생각하고 요약을 한 다음, 그것에 다시 첨언해서 해설과 각주를 다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실 과제는 "논문을 요약해오시오"였지만, 대학원이라는 것은 언제나 나의 최상치에 도달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지적 허영심을 실현시켜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일단 요약을 했고, 나는 이 논문을 기반으로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고 논문을 작성할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써놨다. 다만 각주가 빈 부분이 너무 많다. 읽기는 읽어서 써두기는 했는데, 쌓인 프린트 속에서 각주를 찾아내야 한다. 이 작업은 10월 9일까지 끝나야 하는데, 가능할까 모르겠다.
해내야지 뭐. 이런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나마 과제로 제출하게 될 소논문 주제가 이미 결정된 게 얼마나 다행이 아닌가 싶다.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가보니 나 빼고 다 수필이나 시로 등단을 했다. 나는 아무런 등단패도 없다. 그분들께 없는 데 나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브런치 스토리 에세이 크리에이터 딱지(?)뿐이다. 그분들은 아마 더한 것을 받으실테지만, 기술을 조금 더 다룰 줄 안다는 게 그나마 나에게 위안점을 주기도 한다.
에세이 제목은 <선생님 전 상서>이다. 에세이 주제 발표는 지난주에 끝났고, 지금은 구상중이다. 사실 나는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사람이라서 브런치에서 왜 이렇게 딱지를 주었는지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지난 번 글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주제는 통일되더라도 기복이 심한 글쓰기라 어떻게 봐주셨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그래서 과거의 일부터 들춰내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만만치 않다. 내가 마지막 과제로 골랐을 만 하다.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왜 이 주제로 쓴다고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낙장불입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잘 써내고나면 드릴 수 있을까. 드릴 정도는 될까?
아니면 마음이라도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