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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임경 Sep 13. 2023

경쟁심, 고장

인간은 경쟁을 원동력으로 하는가

학기가 새로 시작되면 교수님들은 학위 논문과 학술 논문, 그리고 단순한 수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위논문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석사를 하고, 박사 중퇴를 하고 다시 입학한 나에게는 익숙한 내용들이지만 사실 석사 입학을 하면서는 한 번쯤 누군가가 설명을 해주었으면 바랐던 적도 있다. (물론 나의 석사는 동기 언니와의 독학으로 이루어졌고, 오늘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때의 나와 언니가 제법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핸드폰이 고장났다. 삼성Z플립4를 스페셜 에디션으로해서 화이트로 사용하고 있는데, 어제 갑자기 화면 색이 이상하게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핸드폰을 펼칠 때마다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플립으로 접어다니는 게 익숙한 나는 핸드폰이 켜지지 않을까 무서워서 결국 핸드폰을 절대 접지 않는 선택을 했다. 택시도 불러야 하고, 개강총회의 저녁 식사 자리도 찾아가야 하고, 당장 공지사항도 확인해야하는데다가 나는 SNS 중독자라서 SNS도 해야한다.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SNS가 고장나면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다. 이번 학기 과제를 위해 노트북을 켜다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RISS(논문 검색 시스템)에 이름을 넣어보았다. 내가 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사실 이런 점이 나를 불편하게 할만한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나도 그렇다. 그 사이에 사실 내가 하지 않은 것은 논문쓰기였을 뿐, 개인적으로는 소설도 썼고 돈도 벌었다. 여러 의미에서는 나도 무언가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욕심이 나는 부분이 있다. 공부를 할까?하면 석사를 하게 되고, 석사를 할까?하면 박사를 하게 된다. 이 이상한 굴레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더라. 사람이라면 응당 갖게 되는 생각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말한 적은 없다.(애초에 개강한지 2주차이고, 그분이 내 지도교수님이셨으면 좋겠으나 운도 띄우지 않은 상태이기 떄문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해서 내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셨다. 이것도 일종의 도움이 아닐까. 교수님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말이다.


브런치의 다른 글에서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주는 것은 불편하지 않으나 받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언제쯤 나아질지 모르겠으나 그냥 막연하게 언젠간 나아질 거라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불편함은 사람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이번처럼 그냥 일련의 우연한 사건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나는 불편한 것이 투성이인 사람이다. 경쟁심은 많고, 어딘가 고장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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