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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임경 Sep 12. 2023

혼자의 힘으로는 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든 도움을 구하자

석사 과정까지만 하더라도 우선 기운이 넘친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교수님은 무섭지만 선배들은 또 무섭지 않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과제는 무섭지만 졸업 논문은 막연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막연하게 살다보면 2년이 지나고,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쏟아내게 된다. 그러다보면 느끼게 된다. 아, 나 정말로 큰일났구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큰일이 아니다. 바로 겁 없이 덤볐던 것이 큰일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겁 없음은 논문을 제출하면서 사라진다. 그렇게 또 다시 겁 없이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된다.


박사과정 진학의 면접은 석사과정과는 또 다르다. 박사라는 것이 본격적인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일종의 전문가 인턴을 뽑는 석사 면접보다는 훨씬 더 생활적이고 디테일한 것을 묻는다. 내가 받은 질문은 "박사 학위 종이 한 장이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 것 같은가?"였다. 거기에서 나는 특별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엇인가는 바뀔 것 같지만, 예상은 못하겠다는 무책임한 말이나 내뱉어버렸다.


결과적으로는 합격이었다. 나를 뽑아주신 분들은 나의 어느 부분에서 합격을 결심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번 박사과정은, 지난 번 그만 두었을 때보다 무게가 있다.


지난 번 박사는 한 학기를 하고 그만두었다. 도망치듯 그만두어서, 장기 휴학이 아예 제적으로 끝나버렸다. 아파서이기도 했지만, 학교 안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평범한 대학원생의 삶을 살았다. 일종의 교수의 갑질을 견디고,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도 했다. 심한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그만두기를 결심했는데, 정작 그만둔 것은 사소한 말 때문이었다.


바로 "새벽씨는 부사도 모르나봐?"하는 말이었다. 박사과정에게 '부사'를 모르냐는 말은 일종의 모독 같기도 했다. 교수는 박사이고 나는 박사과정생이었지만, 수업시간에서만큼은 동등한 연구자여야 한다던 석사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당시 코로나라 비대면 수업이라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메라를 끄고 울면서 따졌다. 그런 나를 왜 뽑았느냐, 부사를 아는 학생을 뽑지 왜 굳이 나를 뽑아서는 이러냐고 말이다. 사실 진짜 억울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전공자들이 보기에도 내가 해낸 과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순전히 기분 문제로 나를 탓했고, 나는 당시 양극성정동장애가 심할 때라서 그대로 터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 나의 지도교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었음에도 전혀 모른 척 했다는 것이었다. 불러서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래도 몰랐던 것 같다. 몇 년 전 일이라,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모두가 어렸던 것 같다. 박사를 하기에 20대라는 나이는 어린 것 같다. 단순히 학위를 땄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알려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 학교의 유사 전공으로 박사학위 재입학을 하면서 석사 1학기 학우분을 제일 먼저 사귀게 되었다. 내가 대학원을 막 입학했을 때와 같은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과제를 매주 해가야 한다는 사실에도 놀라워하는 것이 딱 내 석사 첫학기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 다니는 학교의 면접을 보면서, 교수님께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라. 대학원은 협업하는 곳이다. 공부를 매개로 협업해 크고 작은 과제를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해주셨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뒤었는지 아마 교수님은 이런 사정은 모르실테니 짐작도 하지 못하실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힘들지만, 한번 석사 친구와 함께 대학원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 이번 나의 대학원 생활 생활 신조는 딱 하나다. 모르면 무조건 묻자, 힘들면 무조건 말하자, 무조건 도움을 요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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