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라까(#Silakka, Baltic herring)
매년 시월 초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즈음이면 어김없이 헬싱키 시내 바닷가에는 섬에서 출발한 청어초절임을 가득 실은 배들이 새벽부터 정박해 초가을 발트해의 아침을 연다. 헬싱키 발트해 청어시장은 1743년부터 매년 이어져온 전통적인 행사라니 여기 사람들도 참 어지간하긴 어지간하다. 섬에 주로 거주하는 어민들이 발트해에서 건져올린 청어로 직접 담궈 판매하는 청어초절임. 각종 허브와 향신료를 넣고 절인 초절임 청어는 일년에 딱 한 번 이 맘때만 맛볼 수 있는 지역산 제철음식인 셈이다. 코로나로 시내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마스크로 완전 무장하시고 사다주신 수제청어를 감사하게 올해도 놓치지 않고 맛보게 되었다. 행사 끝나는 마지막 날 전날 시장을 방문하셨다는 시어머니는 청어장수를 염려하셨다. 예년 같으면 준비해온 그 해의 청어를 벌써 완판하고 이미 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쉬고 있었을텐데 코로나로 방문객이 확연히 줄어 마지막날까지 지키고 있어야 한다며 그마저도 다 팔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던 청어장수.
1939년 핀란드 겨울전쟁 이후 이어진 러시아와의 계속 전쟁(1941~44) 중에 태어나신 시어머니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헬싱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셨다. 당시 핀란드에서도 너나할 것 없이 가난하고 굶주릴 때라 쓰레기통에 버려진 청어 머리를 가져다 음식을 해먹었다는 말씀을 레오에게 들려주시곤 하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괜시리 코끝이 찡해온다..
청어초절임에 들어간 재료를 보니 발트해 청어, 물, 설탕, 식초, 양파, 딜, 고수씨, 식용유, 소금, 향료. 소박하지만 풍성하다. 호밀빵에 버터를 바른 후 얹어 먹으니 잘 숙성된 시큼한 호밀빵의 향과 새콤한 청어의 쫄깃한 식감에 부드럽고 고소한 버터의 앙상블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음식이 우리의 눈과 코와 혀를 거쳐 행복감, 만족감, 감사함과 함께 우리 몸 속 하나하나의 세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이해하는 것. 이제서야 내 삶에서도 뭔가 조금씩 정상성이 회복되어가는 느낌이다.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부정적일 수만은 없는 이유일까.
https://silakkamarkkinat.fi/
덧. 원격근무를 하는 남편과 나는 가급적이면 오후 4시 퇴근시간에 맞춰 무조건 컴퓨터를 덮고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두달째 마감과 학교시험준비에 혼이 거의 달아날 지경인 나는 어느새 남편이 해주는 밥 얻어먹고 연명하는 이 집의 하숙생 신세가 되었다. 막상 부엌살림에서 멀어지고 보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는데. 어쩐다.. 남편은 SNS를 안한다:) 어느새 헬싱키는 길고 기인 흑야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시커먼 어둠 사이로 숲 속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몇장 남지않은 황금빛 단풍잎들이 찬란하다. 빨간 스프는 비트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러시아식 보르쉬 스프에 찐득한 사우어크림 듬뿍 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