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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싱키맘 Nov 06. 2020

시어머니는 실라까가 좋다고 하셨어 #1

° 실라까(#Silakka, Baltic herring)


매년 시월 초 찬바람에 옷깃을 여밀 즈음이면 어김없이 헬싱키 시내 바닷가에는 섬에서 출발한 청어초절임을 가득 실은 배들이 새벽부터 정박해 초가을 발트해의 아침을 연다. 헬싱키 발트해 청어시장은 1743년부터 매년 이어져온 전통적인 행사라니 여기 사람들도 참 어지간하긴 어지간하다. 섬에 주로 거주하는 어민들이 발트해에서 건져올린 청어로 직접 담궈 판매하는 청어초절임. 각종 허브와 향신료를 넣고 절인 초절임 청어는 일년에 딱 한 번 이 맘때만 맛볼 수 있는 지역산 제철음식인 셈이다. 코로나로 시내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마스크로 완전 무장하시고 사다주신 수제청어를 감사하게 올해도 놓치지 않고 맛보게 되었다. 행사 끝나는 마지막 날 전날 시장을 방문하셨다는 시어머니는 청어장수를 염려하셨다. 예년 같으면 준비해온 그 해의 청어를 벌써 완판하고 이미 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쉬고 있었을텐데 코로나로 방문객이 확연히 줄어 마지막날까지 지키고 있어야 한다며 그마저도 다 팔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던 청어장수.


1939 핀란드 겨울전쟁 이후 이어진 러시아와의 계속 전쟁(1941~44) 중에 태어나신 시어머니는 전쟁으로 폐허가  헬싱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셨다. 당시 핀란드에서도 너나할  없이 가난하고 굶주릴 때라 쓰레기통에 버려진 청어 머리를 가져다 음식을 해먹었다는 말씀을 레오에게 들려주시곤 하신다.  글을 쓰는 지금도 괜시리 코끝이 찡해온다..

청어초절임에 들어간 재료를 보니 발트해 청어, , 설탕, 식초, 양파, , 고수씨, 식용유, 소금, 향료. 소박하지만 풍성하다. 호밀빵에 버터를 바른  얹어 먹으니  숙성된 시큼한 호밀빵의 향과 새콤한 청어의 쫄깃한 식감에 부드럽고 고소한 버터의 앙상블이  안에서 춤을 춘다. 음식이 우리의 눈과 코와 혀를 거쳐 행복감, 만족감, 감사함과 함께 우리   하나하나의 세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이해하는 . 이제서야  삶에서도 뭔가 조금씩 정상성이 회복되어가는 느낌이다. 코로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부정적일 수만은 없는 이유일까.
https://silakkamarkkinat.fi/ 

. 원격근무를 하는 남편과 나는 가급적이면 오후 4 퇴근시간에 맞춰 무조건 컴퓨터를 덮고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두달째 마감과 학교시험준비에 혼이 거의 달아날 지경인 나는 어느새 남편이 해주는  얻어먹고 연명하는  집의 하숙생 신세가 되었다. 막상 부엌살림에서 멀어지고 보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들지 않는데. 어쩐다.. 남편은 SNS 안한다:) 어느새 헬싱키는 길고 기인 흑야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시커먼 어둠 사이로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몇장 남지않은 황금빛 단풍잎들이 찬란하다. 빨간 스프는 비트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러시아식 보르쉬 스프에 찐득한 사우어크림 듬뿍 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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