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시간에 취미가 뭐예요?를 주제로 이야기하다 한 학생분이 실내암벽타기라고 하길래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셔서 이참에 도전~!!
이 분은 한국에도 자주 왔다갔다 하시는 자연사 박물관 연구원이신데, 서울에서도 여러 곳에서 실내암벽타기를 해보셨다며 한국 실내암벽타기도 다양하고 잼있다며 날더러도 한국가면 꼭 해보고 오란다. 우리 나이 때에는 올라가는 것보다 잘 떨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떨어지는 방법을 몇 번이고 시범을 보이시며 낙상사고 주의하라는 당부와 함께.
땀 뻘뻘 흘리며 노랑이와 초록이를 부지런히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남자를 보며 인사한다. 아들이란다. 우연히 만났다는데, 엄마랑 아들 취미가 같아서 이렇게 종종 우연히 만나기도 하는 듯(헬싱키가 좁아서 생활반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라면 가능한 시나리오~^^). 31살 먹은 아들은 며칠 전 친구 결혼 총각파티(polttarit: 핀란드어로 뽈따릿이라 하는데, 태운다라는 의미가 있다)에 다녀온 이야기를 쏟아내고, 특히 kuplajalkapallo를 해서 온 몸이 다 쑤씬다고 하면서도 낑낑 열심히 암벽을 탄다.
꾸쁠라얄까빨로? 버블축구가 뭐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물어보니 풍선버블 안에 들어가서 축구를 하는 경기란다. 오전 9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7시에 집이 들어갔단다. 당연히 핀란드인들의 필수코스인 사우나도 프로그램 사이에 있었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문화의 저변이 어느 정도까지 확산되어 있느냐하면, 아이가 고2때 학생회 활동을 했었는데, 학생회 행사도 사우나 딸린 별장을 빌려서 하더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눈이 똥그래져서 22시간 파티를 한거야? 했더니, 자뭇 뿌듯한 표정으로 그렇단다. ^^;; 핀란드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색적인 자기들만의 파티 프로그램을 꾸며 즐기는 것 같더라. 초록이 동색일테니, 자신들이 좋아하는 활동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꾸며 함께 즐기는 거다.
한국어 개인레슨을 하는 26살 살라 씨는 얼마전 회사에서 친목활동으로 땀뻬레(Tampere)까지 가서 단체 야외 총쏘기 게임을 하고 왔는데 총알을 집중적으로 맞은 곳이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던 게 떠올랐다.
20년 핀란드에서 살았다고 하면 한국에서 핀란드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핀란드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이곳에 와서 출산, 육아, 교육까지(아이가 고3) 두루 다 거쳐보니 한국엄마로선 교육이라고 답했었는데. 앞으로는 대답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그리고 또 물어보시는게 그러면 핀란드 사람들은 왜 행복한 것 같냐고 물어보신다. 20년 간 이곳에서 함께 살며 오며가며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이들의 모습에서 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느낀다. 핀란드인들의 정신세계를 대변해주는 시수(sisu)정신과도 결이 닿아있는 듯하다. 대게 핀란드를 방문하시는 한국분들은 먼저 스웨덴을 거쳐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스웨덴이 화이불치(華而不侈) 같다면, 핀란드에서는 검이불루(儉而不陋)가 느껴지지 않냐고 되물어보면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하신다.
49살에 인생 최초 실내암벽타기 한 번 하고서 뭐 대단한 일 한 것처럼 수다가 길어졌다. 제일 쉬운 단계인 노랑이랑 초록이 모두 섭렵하고 났더니, 어느새 손바닥이 까져있다. ^^;;
바로 다음날부터 온몸이 구석구석 알차게도 쑤씬다만…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즐거움도 크고, 은근 잼있어서 또 가기로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