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트 Apr 02. 2020

코로나는 왕관이다

[Quaranta Storie] 바이러스가 왕관이라 불리는 까닭

최근 신문을 보면 특히 제목에서 축약을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코로나'라고 쓰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어로 표기하면 무려 7음절이나 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물론 의사들조차 간단히 ‘코로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밀히 말해 이번에 번지고 있는 바이러스의 정식 명칭은 SARS-CoV-2(중증급성호흡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 2)이며, 이 바이러스가 일으킨 병의 이름은 COVID-19(Corona Virus Disease 19)다. 발음도 어렵고 암기하기도 어려운 이 바이러스 이름과 질병 이름을 모두 ‘코로나’가 대체하고 있다. 


라틴어인 코로나(corona)의 본래 의미는 '왕관'이다. 어원을 완전히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가 그 뿌리라고 한다. 라틴어가 사어가 된 후로 일상생활에서 접할 일이 거의 없는 단어였다. '북쪽 왕관 자리(Corona Borealis)'라는 별자리 이름 정도가 그나마 사람들이 알 만하다. 물론 요즘 세상에 별자리 이름 따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하나마나 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의 발음 덕분에 서양문화에 약간 문리가 트인 사람이 그 의미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왕관은 영어로 크라운(Crown), 불어로 쿠론(Couronne), 이탈리아어로는 심지어 그대로 코로나(Corona)다. 


이 코로나가 영어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태양의 코로나 때문이다. 18세기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천문학자인 쟈코모 F 마달디가 일식 때 태양에서 관측되는 방사선이 달의 빛이 아닌 태양의 빛임을 밝혔다. 이후 1809년 스페인의 천문학자 호세 호아킨 데 페레가 왕관을 닮았다는 이유로 코로나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특정 단어가 외국으로 가서 좁은 의미로 축소되는 현상은 매우 흔하다. 가령 아틀리에(atelier)는 본래 작업실이라는 의미지만 한국에서는 '화가의 작업실'만을 지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데탕트(détente) '는 본래 느슨해졌다는 의미지만, 전세계적으로 '외교적 긴장완화'를 의미한다. 


코로나라는 어휘는 바로 이런 현상을 거치면서 '왕관을 닮은 태양의 대기층'을 일컫는 말이 됐다. 이 태양의 왕관은 그 아래 대기층인 광구나 채층보다 훨씬 더 뜨거워서, X선이나 적외선과 같은 단파장을 방사한다. 두께는 5,000km 정도다. 지구의 반경은 6,400km. 태양 반경이 지구의 104배라는 걸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그리 두텁지는 않다. 일식 사진에서 훨씬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코로나 스트림 층에 해당한다. 


미생물학자들이 이 코로나라는 명사를 바이러스에 붙인 건 1960년대였다. 주로 감기나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표면 - 엔벨로프 -에 붙은 단백질 덩어리들이 현미경에서 볼 때 마치 왕관 혹은 태양의 코로나처럼 삐쭉삐쭉하게 보였던 것이다. 인류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수도 없이 감염됐었다. 다만 이번의 이 변종이 아니었을 뿐이다. 


태양의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본래 3차원 구가 2차원의 원 이미지로 투영되면서 왕관처럼 보인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고배율의 현미경을 써서 입체적인 구조가 파악됐다면 '코로나' 대신 '성게' 같은 이름이 붙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을 유발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제2변종’을 줄이고 싶으면 원칙적으로는 ‘바이러스’라고 하는 게 맞다.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를 줄인다고 ‘머리’라고 부르거나 ‘꽃’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미친 여자’라면 또 모를까. 


물론 인간의 언어가 항상 논리적으로 축약되거나 진화하지는 않는다. ‘카페라테(우유 든 커피)’가 ‘라테(우유)’가 되는 식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이나 자기가 보고 싶은 걸 곧 본질이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꼬리가 개를 흔들고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은 현대사회의 노멀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논리, 원칙, 규범, 약속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사회가 논리와 원칙과 규범과 약속을 지키는 곳이었다면 애당초 이 ‘코로나’ 아니‘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을 유발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제2변종’이 이토록 단시간 내에 전세계를 할퀴고 있진 않을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이러스와 좀비의 생존 방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