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베트 Apr 04. 2020

'언노운 걸'의 죽음

[quaranta storie]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의사의 산재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Dardenne) 형제가 감독한 이 영화는 한국에서 '언노운 걸'이라는 괴이한 제목으로 소개됐었다. 


영화 속 제니는 의사다. 프랑스의 한 허름한 마을의 유일한 의료기관인 보건소에서 일한다. 혼자서 애도 받고, 환자를 직접 찾아가야할 때도 많다. 열악한 근로조건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유일하게 그녀를 돕던 수련의마저 여자친구가 임신해서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그만 두겠다고 한다.  


제니는 그 일로 늦은 저녁 수련의와 입씨름을 하느라 병원 입구에서 벨이 울리는 걸 무시한다. 다음날 제니는 벨을 울린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온 불법체류자 여성이었으며, 누군가에 쫓기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병원 벨을 눌렀고, 다시 도망치다 곧 추격자에 의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그 때 문만 열어줬더라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제니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성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내막을 파헤치려 애쓴다. 


유럽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이해하지 못한 미국 관람객들 상당수는 이 영화를 B급 미스테리로만 여긴 것 같다. 로튼토마토의 낮은 관객평점이 이를 증명한다. 유럽에서 '의사'들의 근로조건은 미국과 사뭇 다르다. 많은 의사들이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 80년대 보건소 같은 곳에서 공무원처럼 월급 받고 일한다고 들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 코비드-19가 한국보다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것이 단지 그들의 문화나 생활습관 때문만이 아니라는 거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 때문에 환자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일선 의사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불법체류자 여성을 구하지 못해 죄책감과 책임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제니의 모습에 빗댔다.  


제니는 마치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환자를 자기 부주의로 죽이기라도 한 듯이 이 살인사건에 집착한다. 제니의 이런 강박에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딜레마도 투영됐다. 지난 제국주의시대 때 착취하고 유린했던 아프리카에서 불법이민자와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유럽이 이들을 다 수용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 유럽은 늙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은 선진국이 지켜야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과거에 대한 죄의식까지 끌어안으며 무리하게 불법이민자들과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숱한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제니가 벨을 무시한 근본적인 원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수련의의 사직이었다. 무식하리만큼 간단히 말하자면 의사도 배고프거나 아프면 환자를 볼 수 없다는 거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들이 의술을 갖췄다면 욕심 없이 한없이 베풀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의사들이 갖고 있는 의술은 아무 대가 없이 모두가 한없이 나눠가질 수 있는 무한한 공공재가 아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해서 무작정 공공재로 삼을 순 없다.  


의사들은 맷 데이먼이 출연하는 영화 ‘엘리시움’의 만병통치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간과 노동, 지식, 여기에 자본과 기술까지 결합되어야 비로소 현대의술이 완성된다. 누구나 가서 드러눕기만 하면 절로 나을 텐데 돈이 없다고 해서 못 눕게 하는 게 아니란 거다. 


코비드-19에 감염되어 사망한 의사를 보고, 자원봉사 하다 감염된 것도 아닌데 우리가 왜 추모해야 하냐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한 사람을 보았다. 가슴이 무너졌다. 의사들이 모두 다 자원봉사자여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과학과 기술과 같은 실용적 지식을 천시하는 풍토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리 없다. 그리고 의사들의 노동을 노동이 아닌 ‘마술’처럼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도 무당에게 수천 만원을 주고 굿을 의뢰하는 일이 드물지 않은 나라에서. 


고백하자면 어릴 때 난 공부를 꽤 잘 했다. 게다가 당시엔 지금보다 의대 가기도 훨씬 쉬웠다. 사람들은 내가 왜 의대를 가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난 도무지 의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날마다 아픈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 고집 센 사람들, 여기에 아파서 기분까지 안 좋은 사람들과 씨름해야 하다니 그저 끔찍했다. 이렇게 이기적인 내가 설사 의대를 갔다 해도 과연 의사가 될 수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얼마 전 한 의사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소독약 냄새가 좋아서 의사가 됐는데, 막상 병원에서 제일 많이 맡는 건 분뇨냄새라고. 아픈 사람들은 대소변을 가릴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바로 의사-간호사들의 일이다. 죽음의 전방에서 환자와 함께 싸워주는 전세계 의료인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