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직격탄으로 심장에 쳐들어오던 청춘일 때가 있었다. 하필 심장으로 불어서 숨도 못 쉬게 봄을 타던 소싯적도 있었다. ‘청춘’ 카테고리에 묶을 아주 먼 봄 이야기가 묵은 일기장에 담겨 기억창고에 자리하고 있다. 가끔 일기장을 열면 그 옛 봄이 봉인 해제 되어 나를 아프게 슬프게 아련하게 미소 짓게 한다. 봄꽃에 심장이 두 근 반 세 근 반 나의 통제 밖에서 난동을 피우면 봄을 타는 게 아니라 ‘부정맥’이라고 했던가. 설레던 스무 살의 봄은 부정맥을 걱정하는 쉰의 봄을 상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봄은 설레는 일투성이다.
12월 31일이 지나면서 금기의 빗장이 확 풀려버리는 스무 살의 아이러니.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고 키스를 해도 눈치 보지 않을 스물. 공식적으로 어른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유일하게 8월과 11월, 수능을 두 번 본 1세대. ‘나는 나’를 천명한, X-세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을 몸소 겪고 지금도 AI 세상이 낯설지 않은 세대. 이런 나의 스무 살 봄을 찬양하듯 나타난 드라마가 서른여덟 가을, <응답하라 1994>였다. 선물 같은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음악은 프루스트의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었다. 풋풋했던 20대로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노래에 흠뻑 취한 나는 20대의 타임 루프에서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늘 숙취처럼 입속에 남은 쓰고 텁텁한 뒷맛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개운치 않은 씁쓸함은 당시 X-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그들이 하숙생이었다는 거였다. 주인공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모양이다. ‘다정이 아빠’가 하숙생들의 호구 조사에서 만면에 미소를 지었던 이유는 경제적으로 꽤 괜찮았기 때문이었을 테다. 가슴이 뻑적지근해졌다. 내 부모는 사시사철 햇빛에 그슬린 농사꾼이었다. 자식을 사랑했고 아침 만원 버스에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을 테다. 아직은 마음 놓을 수 없었던 스무 살 맏딸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숙은 언감생심. 세상에 ‘응답하라’의 하숙생 부모가 더 많았을까,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만큼 뜻대로 되지 않은 부모가 더 많았을까.
고등학교 3년에 이어 여전히 밥을 지어 먹고 학교에 가야 했다.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들은 여유로웠다. 배가 아니라 심장이 아팠다. 내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을 내 책장에 전시하고 싶었고, 주말 루틴처럼 개봉 영화를 보고 싶었다. 아, 눈물겹다. 그 후로 내 밥벌이를 책임질 수 있게 되면서 책과 문구를 매점매석 하듯이 사들이는 건 그때의 허전함 때문일까.
물론 내 청춘에도 ‘응답하라’의 추억들이 동시대인의 특허처럼 가득하다. 서태지의 ‘시대정신’에 공감했고 김광석의 노래는 지금도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 ‘개성’을 신줏단지처럼 중요시했고, 팝송보다 우리 언니·오빠의 노래만으로도 노래방에서 두세 시간쯤은 거뜬히 놀 수 있다. 시대의 거대한 회오리바람 IMF는 ‘타이타닉’을 보는 내내 죄책감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대중문화의 시혜를 듬뿍 받은 X-세대였다.
아! 옛날이여.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상처 없는 시간만 추려서 앨범에 담고 싶지만, 20대는 아픈 손가락이어서 애틋하고 보듬어주고 싶은 삶의 단편이다.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씩씩한 척, 눈물겨운 날이 많아서 내내 속이 아리고 쓰린 스무 살의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