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

by 김민희

시골에서 나고, 도시에서 유년을, 다시 시골에서 입학한 초등학교(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이었다)는 아주 작았다. 80년대 도시화의 물결은 시골 초등학교와는 무관했다. 오전반, 오후반은 생소했고, 한 반에 열 명 겨우 넘었을까. 초등학교는 20여 년 전 외관만 남았을 뿐 메주 공장으로 팔렸다니, 말문이 막혔다. 나의 어린 시절이 시대의 거친 유속에 떠내려간 듯 허망했다.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았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알 길이 없다. 하물며 함께 자랐던 동네 친구들의 소식도 어쩌다 명절에나 듣는 형편이니. 사라져가는 쪼그라드는 시골처럼 사람도 흔적을 찾을 길이 없어지나 보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소꿉놀이하고 수영을 했다. 산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 집을 지어 어린 몸들이 오종종하게 들어앉아 도란도란 떠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겨울이면 얼음 위를 달렸고 몇 년에 한 번 산타의 선물 같았던 함박눈(남부 지방의 겨울은 눈이 귀하다)은 온 동네 아이들의 축제였다.


학교에선 연례 행사로 ‘장래 희망’을 물었다. 10년 후 20년 후의 나를 그려보는 과제에 우린 충실히 마음을 다했다. 마치 우리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믿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80년대 ‘초등학교’ 세계에는 선생님, 의사, 간호사, 축구 선수, 군인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밤 9시 뉴스 전에 나오는 텔레비전의 지침에 따라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밤 9시 이후에 세상에 어떤 드라마가 세계 저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몰랐다(동생은 드라마만 보게 했어도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믿는다). 그나마 어린 시절 생각나는 드라마에는 ‘전설의 고향’이 있다. 엄마 등 뒤에서 귀를 막고 실눈을 감았다 떴다가 했으니, 본 게 본 게 아니다.



어린 시절, 장날을 기다렸다. 한 달에 한 번 엄마가 농협에서 가져오는 ‘어린이 새농민’은 내 작은 세상에 제비가 물어다 주는 씨앗이었다. 다른 기억은 흐릿하고 김영숙(훗날 남자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의 순정만화는 나를 흥분하게 했고 꿈꾸게 했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공책 가득 그려진 공주는 철딱서니 없는 혼날 짓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용돈을 아껴 만화잡지를 샀다. 그즈음 순정만화 월간지가 발행되던 때였다. 그 속에 내 사랑, <바람의 나라>, <풀 하우스>, <불의 검> 등등. 아! 부르다 심장이 터질 사랑하는 이름들이여.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산산이 흩어졌을까. 만화는 학창 시절 나의 숨구멍이었다.

열 살, 강변가요제에 나온 이선희는 나의 우상이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수는 큰고모께 면박을 받은 눈물 나는 꿈이었다(고모의 시대는 가수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접을 받았으니). 동네 노래자랑에서 받은 큰 솥은 삼촌의 핀잔에 부끄러운 일이 되어 어린 조카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구나. 내 아이들이 원한다면 뒷바라지를 하겠으니, 딸아이는 음악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흥부자다.


아주 오래된 봄이 잃어버린 앨범처럼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아 슬프다. 그리움은 아쉬움을 담고 있기에 애잔하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절감하는 나이가 되었다니. 어디선가 나처럼 늙어갈 내 동무들은 오늘처럼 연초록 달콤한 꽃바람 부는 날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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