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방 789

by 김민희

곧 쉰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출산은 주위의 찬사와 기대와 우려와 염려 속에서 씩씩하게 이루어졌다. 모유 수유도 완벽하게 마무리했으며 손목이 조금 약해졌을 뿐, 밥 잘 먹고 잘 잤다. 하지만 내 속에 비축된 에너지는 고갈 상태였나보다. 의식도 못 할 만큼 내 더듬이는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준비하지 못한 ‘쉰 앓이’였다.


책은 저만치서 침묵 속에 침잠하고 노트북은 가끔 먼지를 닦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불끈불끈 열정적인 쉰을 꿈꾸는 심장의 요동은 혼자만의 독무였고, 두 다리는 큰 아이 학원으로, 작은 아이 돌보느라 겨우 버티어내고 있었다. 딱 10년만 아이들에게 집중할 것. 대단한 결기가 작심삼일이 되었다. 지친 마음만큼 책을 읽고 싶었고,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즈음 3년 치 일상이 일기장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한 걸 보면 어지간히 힘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버티어내고 있던 날, 딸아이 친구 엄마가 독서 모임을 꺼냈다. 1년여 진행하다 끝나버린 모임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새로운 멤버는 자신이 모을 테니 함께 하자는 거였다. 마지못해, 하지만 간절함의 두 마음으로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어제 읽은 문장이 오늘 새로 시작하는 문장이 되는, 독서도 육아처럼 체력전이었던 고단한 시기였다.


셋째 동생과 동갑이 둘, 열 살 차이, 나와 띠동갑, 막내 남동생과 동갑. 70년대생, 80년대생, 90년대생 여섯 명이 모여 ‘어쩌다 책방 789’가 탄생했다. 독서 모임의 강제성으로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읽어내서라도 독서 목록을 만들고 싶고, 책을 좋아해서 함께 읽고 싶었기에 모인 엄마 타이틀을 집에 두고 모인 ‘나’들이었다.

나의 서태지와 그들의 서태지는 다른 시대를 살았다. 그가 ‘난 알아요’ 했을 때, 그들은 초등생이었고, 미취학에 겨우 세 살이었다. 아! ‘서태지와 아이들’의 탄생조차 몰랐던 아이들이라니. 하지만 육아를 함께 고민하고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다른 서태지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월요일마다 책의 공존지대에서 만났다. 바쁜 일상에 아이에게 가진 미안함과 아이들의 어이없는 엉뚱함과 아이가 주는 기쁨을 이야기했다.


살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인연의 거미줄’을 지을 수 있다니. 친구는 내 삶의 궤적을 알고 굳이 내 성장통을 구구절절 읊지 않아도 되었기에 편안하다. 새로운 인연의 노크에 답할 이유가 없었다. ‘인연의 거미줄’을 짓는다는 품을 팔기에, 내 에너지는 숨이 찼다. 하지만 아이가 열어준 새로운 만남은 인생의 멘토가 되고, 육아의 동행이 되었다. 각자 다른 시대에서 날아와 내 삶을 풍요롭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 은인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음식 재료의 자투리 하나 허용하지 않는 알뜰함과 치밀한 계산력을 배운다.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철저한 계획하에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운다. 일과 육아의 병행에도 지치지 않으려고 운동으로 단련하는 생존 본능을 배운다. 때론 무조건 저질러 보는 무모한 도전자의 배짱도 배운다. 아이의 말을 찬찬히 들어주고 조곤조곤 설명하고 화내지 않으려는 참을성을 배운다. 궁금한 건 알아보고 공부하면서도 피곤하지만 불평하지 않으려는 인고의 노력, 긍정성도 배운다.


그 덕분에 일단 소파에서 한없이 편해지려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려고 한다. 나에게 너무 관대해지지 말자. 더 이상 받아주면 안 돼. 아이에게 ‘나이 많은 엄마’로 가련한 척, 어물쩍 넘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피곤하다. 체력이 금방 소진되어 ‘오늘은 이 정도에서 스톱!’ 선언한다. ‘알 수 없는 인생’이라고 이문세 아저씨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울린다. 쉰에 나보다 어린, 하지만 더 씩씩하고 현명하고 에너지 가득한 친구들을 만날 줄이야. 알 수 없는, 인생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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