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

by 김민희

지천명? 쉰 살을 이르는 말로, 공자는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한다. 하늘이 나에게 대(大)작가의 천명을 준 줄 알았다. 그도 아니면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오를 줄 알았다. 도대체 쉰에 깨달아야 하는 하늘의 뜻이 무엇이란 말인가. 여전히 마음 하나 다잡지 못하고 갱년기를 빌미 삼아 지청구를 늘어놓는 쉰인데.

까마득히 먼 유년 시절 일찍 철든 아이의 작은 등이 애처로워 목이 멘다. 참담한 청춘의 푸른빛 속에 허우적대는 ‘어른아이’가 안쓰럽다. 삶의 오리무중에, 불안하게 흔들리는 발걸음마다 눈물을 훔쳤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니체의 주문을 신조처럼 받아들여 생을 긍정했다. 부모의 굳건한 생활력과 유쾌함이 대물림 되었으니 나는 ‘마음 튼튼 몸 튼튼’을 외치며 견뎌보자고 악다구니 썼다.

마흔을 기다렸다.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요동치는 질풍노도에 갈피를 못 잡는 내가, 마흔쯤이면 세상을 깡그리 날려버릴 거친 바람도 잠재울 수 있고, 미친 듯 몰아치는 파도에도 어지간하면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소망했다. 그래서 불혹은 바람과 파도에 순응했나, 아니면 타협을 했나? 힘 빠진 객기나마 부렸나? 심장에 굳은살이 박이고 배짱은 두둑해졌나? 숫기는 뻔뻔할 만큼 대범해졌나? 마흔이면 충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껏 다져온 50년 내공으로 또다시 열 번의 봄을 맞이해야 한다. 아직 하산할 때가 아닌 모양이다.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전혜린의 말을 청춘의 가슴 속에 품고 산 적이 있었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그 글로 책을 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달콤한 인생’을 꿈꾼 적이 있었다. 어디 세상에 쉬운 일이 있나. 노트북 아이콘 속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인생사가 푸지기다. 내게 소리친다, 우리를 내버려 둘 셈인가? 어쩌니. 아이도 키워야 하고 밥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날이 좋으면 산책도 해야 하고 비 오는 날 친구와 동동주에 파전도 먹어야 하는데. 책에는 왜 그리 욕심을 부렸나. 차곡차곡 쌓인 책으로 벽돌집을 지어도 될 듯하다. 특별할 줄 알았던 지천명에 이르렀지만, 하늘 볼 시간도 없어라.


‘내 마음 나도 몰라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이립, 삼십은 거짓말이다. 서른 중반에 결혼할 때도 여전히 시행착오와 두려움으로 숨고 싶었다. 불혹이라지만 계절마다 내리는 비에 젖고 부는 바람에 마음이 흩날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층을 이루었나 내 발밑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구나. 켜켜이 쌓인 내공에 부는 바람에도 배짱부릴 여유가 생겼구나. 어느 날부터인가 살포시 내려앉은 흙 위에 나무도 자라고 꽃도 핀다. 새도 날아오고 나비도 날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사는 건 축복이구나. 살아있으니 살아내는 수고로움을 삶의 당위로 받아들이는 쉰이다. 덜 울고 더 웃을 수 있다. 내 상처가 흔적은 남았으되 아프지 않고 내 사람들에게 마음을 쓸 수 있으니 대견하다.


옛말 틀린 거 없다. 너도 부모가 되면 다 알게 된다. 나이가 사람을 가르친다. 듣기 싫은 어른들의 하나 마나 한 잔소리라고 두 귀를 막았다. 내 통증을 어떻게 안다고, 내 눈물의 의미를 어찌 안다고, 내 사정을 알 리가 없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의 말이 입안에서 빙빙 맴돈다. 가끔 나이 먹은 선배라고 불쑥불쑥 말이 나오려 할 때는 당황스럽다. 그러지 말아야지. 마치 내가 겪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고 후배에게 청춘들에게 어른인 척 뻐기고 싶은 게 아닌가, 어이가 없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다. 그 가시를 빼는 수고로움은 각자의 몫이다. 아픈 시간은 아물고 잊히기도 하더라. 영원히 가는 작은 가시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다 피식, 자다가 별거 아니었잖아 등 돌릴 날도 오는 게 지천명이더라.

지천명을 깨달을 즈음 이순이 오겠지. 귀가 순해진다니 이 또한 무슨 심오한 말씀일지 때가 되면 알겠거니 옆으로 밀어둔다. 내일 또 '오늘이'가 온다. 얼마나 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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