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에게 ‘고래의 숨구멍’과 같았다. 제 감정이나 속마음을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어린 날엔 고통이었다. 어른들의 칭찬에 부끄러워 눈물부터 나고,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훌쩍거렸다. 심약한 건지, 여린 건지 알 수 없는 어린 내가 가끔은 짠하다가 때론 상대가 무참했겠다 싶다. 그런 나에게 잠들기 전 눈을 감고 펼치는 상상의 세계는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사춘기 시절 쓰는 행위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배설이거나 위로였다. 지금은 일상이며 기록이고 습관이 되었다.
작가를 꿈꾸었다. ‘작가 지망생’으로 스스로에 부여한 명패는 고통스러웠던 청춘의 슬픔도 자양분이라 속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환각제였다. ‘희망고문’으로 점철된 지망생 놀이는 한층 한층 켜켜이 쌓여 지층이 되어갔다. 내 마음은 화석처럼 딱딱한 돌덩이가 되어갔다. 지난한 청춘이 지나고 따뜻하고 여유로운 겨울을 가질 만큼 어른이 되었다. 세월이 약이긴 했다. 작가가 아니어도 살 수 있고, 행복한 삶도 가능하다고 합의했으니.
몇 날 며칠을 시달린 복통처럼 자각한 자의 슬픔으로 쓴다는 일이 더욱 나를 비참하게 했다. 타고난 재능도 미약했고 신에게서 천재성을 선사 받지도 못했다. 근면 성실한 공무원 작가도 아니었고 금기에 도전하고 전복시킬 만큼의 배짱 또한 일절 없었다. 더는 취미로만 머물 수 없다고 나도 글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일, 작가로 살고 싶다고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싶었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듯한 20대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바친 파우스트를 꿈꾸었지만, 나는 거래할 패가 없었다. 감히 괴테에 비하다니. 온 밤을 바쳐 얻어낸 글은 쑥스럽고 낯부끄러웠다. 10대였으니, 20대였으니 애써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 작품엔 억장이 무너지듯 쓰리고 부러웠다. 왜 신은 취미로 끝날 재능 정도로 나를 이토록 괴롭히시나. 전생에 글로써 숱한 사람의 귀를 호도하고, 세상을 어지럽힌 사문난적이었나. 그 벌을 지망생이란 서러움으로 받는 것인가.
시간이 흐르면서 냉철한 자기 검열에 들어갈 정도로 심장이 단단해졌을 때 물었다. 나의 수고는 지쳐 곯아떨어질 만큼 최선을 다하였던가, 대작가들의 한줄 한줄을 성심성의껏 들여다보고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했던가. 사람들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두어 물어보고 알아보려 했던가. 도리어 아픈 사람들의 사연에 내 속이 아프다고 고개 돌려 외면부터 하지 않았나. 부조리니, 정의니 주억거리며 관념어만 남발하고 냉소적 시선으로 회피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떤 글을 쓰겠다는 것인가. 내 넋두리를 다듬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도 충분한가. 나도 세상에 울릴 만큼, 큰 파문을 일으킬 만큼, 대대손손 서점 한 벽을 차지할 정도의 스테디셀러를 꿈꾸어 본다. 지금은 내 역량이 한 페이지 써낼 만큼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변명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하다. 쉰에 시작이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