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의 생기는 그때와 마찬가지였다. 쉰을 넘은 우리는 곧장 3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갔다. 지나가다가 ‘어’, 발걸음을 멈추고 ‘너’ 할 수 있을 만큼 그 얼굴 그대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우리의 30년 후 모습은 딱히 달라진 게 없어 놀랐다. 사춘기 소녀 소년들이 중년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5월의 셋째 주 토요일 물 좋고 정자 좋은 계곡 옆에서 시끌벅적 동창회를 시작했다.
참석하지 못한, 어디 살고 있는지 알 길 없었던 친구들은 누군가의 연락처에서 불려 나왔고, 급기야 30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영상통화로 오지 못한 친구와 인사하고 다음을 약속했다. 모두에게 서로가 모르는 시간을 건너뛰는 건 암묵적 동의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부모가 되어 부모님을 보내 드렸고, 아이들이 30년 전 우리보다(물론 나는 예외였지만) 성인이 되었다. 승진을 함께 축하했고, 입대를 앞둔 아들의 건투를 빌었다. 아, 내 아이는. 이제 서로의 경조사를 함께하며 슬퍼하고 기뻐할 나이가 되었구나.
아주 오래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들의 안타까움은 짧은 한숨으로 묻었다. 살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있더라. 그 시절 이해 불가했던 말을 알게 된 나이가 되어 있었다. 연락이 끊겨버린 친구들, 그만의 사연과 사정이 있겠지. 건너 건너 물어서 사는 곳을 알아보는 거야 작은 품을 팔면 될 일이지만, 혹여나 원치 않는 반가움이 될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문득 더 이상 동창회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분 한 분 영원한 이별 길에 어느 해부터 뒷걸음치듯 발길을 끊었다 하셨다. 그 또한 암묵적 동의였을까, 이제 어쩌다 한두 분이 모여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신단다. 서늘한 시린 바람이 빈자리를 지나는 모양이다. 어떤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까. 역사책에서나 보던 가난에 등 떠밀려 산업현장의 일군이었던 시골 아이들. 40년 50년을 휙휙 날아 가난한 시절을 보상받듯 부부 동반 꽃놀이 단풍놀이 해외여행으로 즐거웠을 텐데. 황혼은 어떤 냄새가 날까.
당신조차 희미한 유년 시절을 함께한 늙어버린 친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 즐거웠을까. 그 빈 자리가 주는 허전함과 생의 끝이 문밖에서 맴을 돌 때는 어떤 마음이 들까. 먼저 가버린 친구의 장례식에서 자연의 이치니 받아들여야지 했을까, 친구에 갚지 못한 은혜를 미안해했을까, 서운한 마음 채 풀지 못했다고 도리어 원망했을까. 다음은 내 차례인가 겁이 났을까.
아직은 쉰의 깔딱고개에서도 의기양양한 나와 동창들은 먼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첫사랑 무용담을 대놓고 당사자 앞에서 능글맞게 기억에서 소환시켰다. 사춘기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순진해서 낯간지러웠다. 추억의 공존지대에서 현실의 각자 삶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으로 떠들썩했다. 어찌 알았을까. 30년 후, 우리가 쉰이 될 줄을, 또한 예순이 되고 서로의 마지막을 기억해 줄 누군가가 되어 있으리라고.
집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먼저 자리를 떠나야 했다. 밤새 무슨 즐거운 이야기로 음주 가무로 흥겨웠을까. 마음이야 30년 전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친구들아, 숙취 음료 꼭 챙겨라. 다들 건강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