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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Apr 09. 2018

복직 한 달의 기록

1. 일과 육아의 기로에 선 워킹맘

  “지금이 중요한 시기인 거, 알지? 능력 있는 후배들 넘치고, 윗사람과 사내정치도 해야 하고.

어영부영 지내면 시간 금방이야. 올해 팀장 안되면 기회는 다시없다고 생각해!”


  6개월의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지 한 달. 좋은 성과까진 아니라도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했던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한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가 직접 불러 조용히 얘기했다.





  나름 치열하게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때그때 해야 할 일만 해치워도 시간은 흘렀다. 나에게는 남는 시간 같은 게 없었다.

 

  큰아이는 29개월, 작은아이는 7개월. 여전히 손이 많이 가고 그새 병원신세도 졌다. 아침 출근 준비만 해도 어느새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엄마, 엄마!”를 부르며 거실로 기어 나왔다.


  퇴근해서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같이 누워 동화책을 읽다 보면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거나 너무 피곤해서 몸을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밀린 업무도 해야 하고 쓰고 싶은 글도 있는데 나에겐 주어진 역할이 너무나 많았다.


  컴퓨터를 켜면 아이들이 달려들어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거나 화를 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저리 가.”라고 말한 적도 있다. 몸이 고단하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아이에게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는 속으로 “내게 최소한의 자격은 있는 걸까.”라는 물음을 수십 번 던졌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덜 행복할 수는 있어도 분명 더 편하고 안정적인 삶이겠지.

  지금같이 일에 치이고 아이들에게 치이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정신없는 일상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는 모습일 것이다.


  오늘은 베이비시터에게 ‘아이가 설사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설사하면 열을 재봐야 하는데 체온계를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베이비시터에게 체온계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큰아이는 일주일째 기침하는데도 병원에 데려가 보지 못했다.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갔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과연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도움 없이 일과 육아를 둘 다 잘하는 워킹맘이 있긴 할까 의문이 든다.





  그래도 정시에 퇴근해서 아이들이 잠들기 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야근하고 잠든 아이 얼굴밖에 볼 수 없는 맞벌이 부모들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인 일이다.


  퇴근길 영상통화로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좋아할 때, 두 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와(기어와) 안기며 웃을 때, 주말 온가족이 집앞 공원에서 뛰놀다가 “엄마아빠와 같이 있어서 좋아?”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대답할 때 아이들 덕분에 행복하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주변 사람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는 베이비시터와 어린이집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선생님들, 같이 맞벌이하면서도 육아와 집안일을 바쁜 나 대신 도맡아 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남편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많은 부분에서 배려해주는 직장동료들과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친구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한 취재원과 나눈 대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죠. 조금만 고생하면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린다고. 그런데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 건 확실할까요? 오늘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게 우리 인생이잖아요.”





  지금 힘들어도 일하는 이유가 아이들이 커서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믿는 데 있던 나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일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경계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출근길과 퇴근길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지금의 내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훗날 다시 흔들릴 때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엄마를 이해하게 될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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