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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Apr 10. 2018

며느리 도리

2. 결혼은 희생을 전제하므로

  얼마전 시집 사촌형님을 회사 근처에서 만나 식사했다. 형님은 최근 보험설계(FP) 일을 시작해서 마침 필요하던 어린이보험 두 개를 가입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며 형님이 말했다.


  “곧 제사라 또 보겠네. 올해는 며칠이더라. 동서는 연차 내는 거야?”

  “......”



  결혼 3년, 세 번의 제사와 여섯 번의 차례를 지냈지만 지금까지 시집제사 때문에 회사에 휴가를 낸 적은 없었다. 첫해는 임신해서 쉴 때고 그 다음은 운좋게도(?) 주말이었다.


  친정도 1년에 총 네 번의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결혼 전에는 늦더라도 늘 참석했다. 제사는 조상을 기린다는 명목 하에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고 생각해서 제사문화 자체에 거부감은 없었지만 제사를 지내려고 회사를 결근하는 생각은 한번도 못했기에 나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시집 맏며느리인 친형님은 제사 때마다 회사 연차를 내고 장보기와 전 부치기, 온갖 음식 준비에 정리까지 모든 일을 거의 혼자 도맡아했다. 자영업하는 작은부모님도 있고 아주버님들도 하루쯤은 휴가를 낼 수 있었을텐데 내가 아는 한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나의 시집은 나름 진보적인 제사문화를 갖고 있다. 기제사는 시어머니대에서 1년에 한번으로 통합했고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최대한 간소하게 치른 후 남자들도 간간이(!) 일손을 돕는다.


  1년에 제사와 차례만 열두번씩 지내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겠지만 온종일 허리 한번 못펴고 일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느끼던 허무함은 이전에는 차마 상상도 못할 경험이었다. 결혼 첫해 추석에는 임신 9개월의 배를 안고 앉아 전을 부치다가 남몰래 눈물을 훔친 아픈 기억도 있다.


  그래도 시집 식구들 성격이 좋은 편이라 모이면 오순도순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다보니 크게 부부싸움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문제는 아이 둘을 낳고 맞벌이하면서 시작됐다.

  이제 막 “함니~”(할머니) 하며 말을 하는 첫째와 기어다니며 옹알거리는 둘째가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오죽 예쁠까. 반나절 회사에 가있는 나도 아이들이 보고싶어 눈앞이 아른대는데 양가 부모님도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 “아이들이 보고싶은데 언제 오느냐.”고 물으신다.

  말하자면 며느리 도리는 ‘손주들을 보여드릴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친정부모님도 같은 말을 하지만 차이라면 내가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육아휴직 동안은 한 달에 평균 두 번 이상 격주로 부모님을 찾아뵀다. 복직하고는 일주일치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야하고 네 식구가 가까운 교외로 놀러갈 시간도 필요하고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도 있고 매달 돌아오는 주말당직도 있다보니 사실상 한 달에 한번도 힘든 것이다.


  제사 한번, 명절 두 번, 양가 부모님 생신 네 번, 어버이날만 해도 최소 한 달 반에 한번씩은 부모님을 뵙는 건데 실제로는 더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혼 전 주말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는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회사로 인해 지친 마음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주말도 내 것이 아니다.





  결혼은 희생을 전제하므로 누가 더 손해보는지 계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랑은 이율배반적이다.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문득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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