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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Apr 20. 2018

이혼할 뻔한 사건

3. 결혼생활도 사회생활

  결혼 후 우리 부부가 다투는 이유는 대부분 아이 양육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이다. 유튜브를 보여주는 시간을 놓고, 아이 먹이는 일로, 카시트에 태우느냐 마느냐 등등 단 하나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래도 나름의 대화와 배려로 잘 풀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초대형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많은 부부싸움이 그렇듯 발단은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산 배즙과 도라지즙이 문제였다. 기침감기에 도라지즙이 좋다고 해 샀는데 아이 입맛에 쓰다 보니 거부하는 바람에 배즙을 번갈아 먹이던 상황이다.


  "젖병에 아기 도라지즙 좀 담아줘."

  "자, 여기."

  "이거 배즙이잖아? 도라지즙 달라고 했지, 언제 배즙 달라고 했어?"

  "왜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 다시 바꿔달라고 하면 되잖아!"

  "내가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 너야말로 쓸데없이 큰소리를 냈잖아!"


  대화 도중 화를 내며 방으로 들어간 남편에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남편을 따라 들어가 안고 있던 아기를 내려놓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집 앞 계단에 앉아 친구들과 카톡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후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있었다.


  우는 아이를 내팽개치고 나간 너 같은 엄마는 필요 없다며, 너의 행동에 모든 정이 떨어졌다며 화를 내는 남편의 태도를 마주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이 떨어졌다면, 이혼해 그럼."이라고 말해버렸다.




  결혼해서 이혼 얘기를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싸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진짜로 이혼까지는 안 하더라도 갈 데까지 갈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을 내뱉어가며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

  아이 앞에서 다툰 것도 모자라 서로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빼앗고 뺏기고 소리를 지르고 이성을 잃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했다.


  많은 말들이 오간 뒤 조금은 진정됐을 때 나는 남편에게 "정말 이혼할 생각인 거냐."라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속으로는 '설마 아이들이 있는데 이혼할 수 있겠어', '지금은 화가 나서 그러겠지'라고 안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너같이 감정적으로 문제 있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은 누그러들 뻔했던 내 분노를 다시 일으켰다.

  소송하면 친권과 양육권은 엄마인 내게 유리하다고 말하니 남편은 소송해서 빼앗기는 한이 있어도 당장은 한시도 나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정말 이혼하게 되는 건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다고 상상하니 눈앞이 캄캄해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남편과 성격차이로 심하게 다툰 날은 차라리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낫겠다고 체념한 적도 있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니 두렵고 슬펐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날 어렵게 화해했다. 물론 그날의 상처는 우리 모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나아진 점이 있다면 평소 서로에게 더 조심하고 싫어할 만한 말과 행동을 자제하게 됐다는 것이다. 언젠가 또 부부싸움을 할 날이 올지 몰라도 그날의 기억을 경험 삼아 돌이킬 수 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결혼생활이 사회생활보다 힘든 이유는 상대가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이 있다면 30년 넘는 인생을 살며 익숙해진 나의 일부라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배우자의 싫은 부분을 변화시키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폭력이라는 주의였는데 살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 같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사건이었다.

  이혼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가장 슬펐던 것은 아이들과 헤어지는 게 아닌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그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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