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성장기
‘딩동.’
“누구세요?”
“산타할아버지예요. 우리 어린이들 부모님 말씀 잘 들었나요?”
“우아!”
현관문을 연 순간, 열 명의 아이와 아홉 명의 어른은 놀라서 함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흥분해서 방방 뛰었고 엄마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산타클로스가 집으로 올 거라는 사실은 나와 네 명의 아빠들, 그리고 산타로 분장한 내 남편만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추억을 준 2018년 12월의 홈파티와 산타클로스. 아이들은 인생의 첫 친구를 통해 사랑을 배웠고 우리는 성장했다.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재작년, 학부모들과 알고 지낼 기회가 없었다. 남편이 등·하원을 담당했고 어린이집 행사에 가서도 엄마들과는 데면데면 지냈다. 어차피 직장맘인 내가 전업주부 엄마들과 친해지기는 힘들고 학부모 사회는 교육열 높은 엄마들이나 관심을 갖는 것으로 판단했다.
회사생활보다 어려운 게 엄마들의 세계라고 먼저 학부모가 된 친구들에게 숱하게 들은 데다 회사일과 육아만으로 바쁜 내가 굳이 낄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둘째 솔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는 혼자서 등·하원을 시키다 보니 엄마들을 마주치는 일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놀이터를 가고 서로 집에 초대해 공동육아를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막상 해보니 공동육아는 엄마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율이가 네 살이 되자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뿐 아니라 친구들과 노는 어린이집 생활을 좋아하게 됐다. 어린이집을 가도 선생님에게만 의지하고 친구들과 교감이 없던 1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주말 내내 친구들을 못 보면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다.
어린이집은 아이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끝내는 곳이라 부모 다음으로 정서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스스로 친구를 사귈 수 없는 나이다 보니 부모의 참여가 필요했다.
지난 시간 돌아보면 좋았던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부부 사이도 서로 다른 육아관으로 자주 틀어지는데 내 육아방식을 지적받거나 아이들끼리 다퉈서 상처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지 당황스러웠다.
예전 베이비시터가 해준 말 중에 “아이 키울 땐 옆집에 놀러 가지 말라. 칭찬할 일도 혼내게 된다.”라는 얘기가 있었다.
육아를 하며 가장 중요한 일관된 기준이 공동육아를 할 땐 뒤죽박죽이 됐다. 평소 같으면 혼내지 않을 일도 눈치가 보여서, 무개념 엄마로 보이지 않으려고 잘못 없는 아이를 훈육했다. 반대로 내 아이는 혼내도 남의 집 아이는 못 혼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리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했다. 저마다 다른 방식도 배워가는 과정 중에 깨달은 건 내가 아는 모든 부모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엄마는 아이와 놀아주면서 단 한 번도 화를 안 냈고 아이에게는 직접 만든 음식만 먹이는 엄마도 있었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통해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서로의 좋은 선생님이다.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면,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 속에서 좌충우돌 쌓는 어린 시절 추억은 너무나 소중하다. 순간순간 발견하는 천진난만한 웃음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다. 초등학교 이후의 학부모 사회가 입시 등의 정보교류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다만 공동육아의 전제는 다른 집 아이도 내 자식처럼 보살피겠다는 하나의 약속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도 질서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아이로 인해 내 아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
또한 육아관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았다. 아이를 어떻게 혼낼지, 유튜브를 얼마큼 보여줄지,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일지, 영어유치원이나 국제학교를 보낼지 등등의 선택 문제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꼭 맞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식을 존중하되 흔들려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