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너의 입장이 돼보니…

by 노향
장면1.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런데 12시 전 오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새벽 1시가 넘도록 무소식이었다. 얼마만의 자유인데 방해하지 말자며 참았지만 새벽 2시가 넘으면서 나는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생후 100일도 안된 아기가 지칠 줄 모르고 우는 데다 인내심에 한계가 와 여행가방을 싸놓고 남편을 기다렸다가 집을 나가버렸다.
장면2. 3년 만에 전 직장 후배를 만났다. 둘 다 아이를 갖고 보니 할 이야기가 많았다. 평일 퇴근 후 7시10분에 만나 9시55분에 자리를 일어서니 세 시간도 못돼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됐다. 남편이 화가 나 있었다. 밥만 먹고 온다고 해 10시 안엔 올 줄 알았다며. 10시 5분 전에 일어났는데도 지하철을 타서 한시간이 걸렸다며 다퉜다.


워킹맘으로의 시간 동안 가장 힘든 점은 육아와 회사생활을 병행하는 것보다 다름 아닌 부부 간에 서로의 외출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집에서 육아할 땐 늘 화나 있는 사람이 나였는데 이제는 남편이 됐다.


“나는 하루 왕복 두 시간 반을 지옥철에서 보내고 주말엔 육아와 집안일도 도와주잖아. 이 정도론 부족해?” 남편이 화를 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건 예전에 남편이 내게 했던 말이다.


집안 살림을 하는 사람은 온종일 회사일을 하는 사람의 퇴근길만 기다린다. 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아이를 받아 안아야 남편은 밥도 먹고 밀린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늘 부딪치게 된다. “아이 두고 밥 먹으면 되잖아. 아니면 안고 먹어도 되잖아.” 이렇게 말해보지만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갓난아이를 안고 하루 종일 씨름하다 보면 밥은커녕 허기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참으면 아이를 맡기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데다 누워서 쉴 수도 있다. 그 생각만 하며 기다리는 10분은 10시간 같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우리 부부는 감정싸움을 지속했다.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불쌍하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엔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를 마치고 회식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했지만 약속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었다. 뒤늦게 남편에게 전활 거니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저녁을 안 먹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결국 심하게 다퉜다.


“회식 때문에 늦어서 화내는 게 아니라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하면 몇시쯤 도착한다고 정확하게 말해주는 게 어려워?”

과거와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우리는 서로 바꿔 말하고 있다. 화를 내는 사람과 사과하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몇번의 반복된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되 약속시간을 정해놓고 반드시 지키자는 것이다. “빨리 올게.”와 같은 애매한 말보다 “몇시까지 올게.”라고 정확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좋다.


힘든 날들이 계속됐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화가 나도 아이로 인해 다시 웃게 된다.

무표정으로 앉아있는 내게 율이가 다가와 웃었다. “엄마마!” 옹알이를 하며 내 옷을 잡아당겼다. 나도 마지못해 따라 웃다가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 아가 정말 귀엽다.”

“응. 자기를 닮았어.”


이렇게 쉽게 화해하며 한 가지 좋은 점은 서로의 입장이 돼보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남편에게 화를 내지 말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나는 그렇게 너를 이해하게 됐으니 우리, 남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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