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특별했던 수중분만의 경험

by 노향

11개월 2주차에 접어든 율이가 오늘따라 왠지 부쩍 자란 느낌이다. 아기침대에 누워 꼬물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걷고 말하고 감정표현도 거침없이 하는 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출근길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작년 이맘때쯤 쓴 출산 후기를 발견했다. 모든 것이 서투르고 준비조차 안돼 있던 우리에게 던져진 당시 태명 안녕이. 1년 전 그날을 추억하며 블로그의 글을 다듬어본다.



출산 하루 전날의 새벽. 블로그의 수많은 후기들을 읽고 또 읽어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임신 열 달 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유도분만 예약일을 앞두고는 두렵기만 하다.


임신 후 남편과 상의 끝에 수중분만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10월의 마지막 주 아기 체중이 3.1kg을 기록했다. 담당의사는 초산이자 노산으로 수중분만을 하기엔 작지 않은 크기라 촉진제를 맞는 편이 낫겠다고 권유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유도분만에 대해 좋은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무서운 건 유도분만에 실패했을 경우 수술을 통해 아기를 꺼내야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과 의사의 설득, 그리고 나도 내심 하루빨리 출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로 예정일을 3일 남겨둔 채 유도분만을 결정했다.


입원 첫날은 촉진제를 맞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배가 약간 아프긴 했지만 진통이라기엔 아주 미세한 통증이었다.


그렇게 떨리는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촉진제를 맞고 약 8시간 동안 약한 진통을 느꼈다. 약한 진통이라고 해도 전날보다는 꽤 아팠으므로 중간중간 비명을 질렀다. 분만실에 있다 보면 다른 산모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데 그 때문에 더욱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오후 3시쯤 자궁이 5cm 열렸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됐다. 진통 이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진과 태동검사였다.
간호사 손이 자궁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자연분만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허리가 곧게 펴지지 않아서 똑바로 눕기가 힘들었는데 태동검사를 하려면 옆으로 누워선 안됐다. 그래서 수시로 하는 태동검사가 견디기 힘들었다. 태동검사는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위험한 경우 응급수술을 하기 위한 조치인데 나는 막판에 이르러 태동검사를 안 받겠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고 자궁이 1cm 더 열리며 입수할 수 있게 됐다. 보통은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수중분만을 시작하는데 나는 시간을 지체한 터라 할 수 없이 서둘러 입수했다.


양수가 터지지 않아 결국은 간호사가 인위적으로 터뜨렸는데 엄청난 양의 뜨거운 물이 흘러나와서 만삭이던 배가 푹 꺼졌다.



물속에서의 두 시간은 정말 끔찍한 고통이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아기가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수중분만은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입수 직전 알았다.


내가 수중분만을 선택한 이유는 물속에서 보다 안정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물속에서 잠이 들었다 깼다를 셀 수 없이 반복하면서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기억마저 가물가물했다.


수중분만이 3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산모와 아기가 둘 다 위험해지므로 나는 두 시간 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담당의사가 분만대 위로 올라가자고 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지금이라도 수술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분만대 위로 오르자마자 아기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신기하게도 분만대에 올랐을 때 느낌이 왔다. 아기가 나오는구나.


진통 12시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우리의 2세 안녕이. 기적같은 기분이 들고 동시에 온몸이 찢기는 고통이 찾아왔다. 머리가 나오면 끝인줄 알았는데 힘이 다 소진된 상태라 아기의 어깨가 나오질 못했다. 의사가 아기 어깨를 잡아당겨 마침내 분만이 끝났다.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헬이야,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몸 구석구석이 여전히 아픈데도 '살았다.'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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