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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좌충우돌 육아톡
#035. 안티 슈퍼맘
by
노향
Nov 4. 2016
내가 다니는 회사는 드물게도 고위직인 대표와 편집국장이 여성이다.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 그 사실이 놀라우면서 내심 안심이 됐다. ‘같은 여자니 워킹맘의 고충을 잘 이해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 와서 보면 순진했던 생각이다. 두 분 다 좋은 상사지만 직장은 개인의 사정이나 편의를 봐주는 곳이 아니므로 나는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배려를 받기는커녕 더 사내의 모범이 돼야한다는 부담을 받는다.
상사들도 설령 속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을 갖더라도 겉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동료와 형평의 문제고 아이엄마라는 이유로 배려받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는다.
한번은 감기로 고생할 때 대표가 내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너무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마. 회사일, 집안일 둘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나는 그 한마디가 고맙고 미안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집안일은 신경쓰지 말고 회사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얼마 전에 여성 은행장 인터뷰 기사 봤어? 나는 그 기사 첫 줄만 읽고 화가 나서 던져버렸잖아. 워킹맘 혼자서 새벽 일찍 일어나 남편 식사 차리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출근하는 게 말이 되니? 워킹맘은 슈퍼맘이 아니야. 회사일만 잘해도 힘든 게 현실인데.”
대표의 말을 곰곰이 따져보면 회사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중이 느껴졌다. 많은 워킹맘이 그렇겠지만 나도 회사에서는 육아와 집안일에 무심해보이려고 한다.
또 아이가 아팠는데 마감일이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야근까지 한 적이 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고 차마 아이가 아파서 조퇴하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지 한참 후에 국장과 면담하면서 그때 아이가 걱정돼 일이 손에 안 잡혔다고 털어놓았다. 국장은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생기면 꼭 얘기하고 가보라고 말하며 위로했지만 나는 애써 강한 척했다.
“제가 가도 아이에게 해줄 게 없는데요 뭐. 엄마가 아니라도 병원에 데려가줄 사람이 있으면 되죠.” 국장은 내 말에 정말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맞아. 그건 맞는 말이야.”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대답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일을 적게 해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요령이 있듯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터득하게 된다. 눈에 띌 만한 행동은 최대한 적게 하는 게 낫다는 뜻이다.
일과 육아, 이 둘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선택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가치가 다를 뿐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다만 아이를 낳은 후 달라진 것은 일과 개인생활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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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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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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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엄마. 기자. '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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