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결혼을 결심한 서른의 나
서른이 되던 해,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사랑이 전부라고 믿었던 긴 연애의 끝에서,
우리는 어느새 '결혼'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있었다.
사실 난 결혼이란 걸 할 마음이 없었다. 그냥 연애만 하고 내 일에 빠져 살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결혼할 때도 됐지”, “그 정도 만나면 확신이 있지 않겠어?”라며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반응들과 "왜 10년을 만나고는 결혼 안 해?"라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좀 불편하기도 했고, 그 남자집에서 결혼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난 뭔가에 홀리듯 결혼준비를 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확신보단 책임에 가까운 감정으로 그 앞에 서 있었다.
가족을 만들고, 삶을 공유하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통념과 압박 속에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묻지 않았다.
사랑이 있었고, 오랜 시간 함께했었고, 이제는 그럴 타이밍이라는 말들이
당시엔 충분한 결혼의 이유 같았다.
결혼 준비는 말 그대로 ‘준비’가 아닌 ‘투쟁’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기대와 예식장 선택, 혼수 목록과 예단 예물이라는 단어들이
우리 둘 사이에 놓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결혼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결혼은 둘이 하는 거라 배웠는데,
현실은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힌 협상 테이블 같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협상이라기보다는 강압적인 상사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나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서른까지 키워주신 것만 해도 너무 고마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준비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결혼식에 드는 모든 비용, 예단이며 혼수며 하나하나를 내 힘으로 감당해야 했고,
그 선택이 자랑스러운 동시에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시어머니가 내민 혼수 리스트를 보며,
엄마가 한숨 쉬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꿈꾸던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책임지고 감당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나는 '참고, 양보하고, 이해하는 며느리'가 되어야 했다.
사랑보다 체면이, 이해보다 의무가 더 큰 자리를 차지했다.
서른의 나는, 그렇게 '나'보다 '우리', 아니 '남의 시선'을 더 먼저 생각하며
결혼을 결정하고 준비하고, 견뎠다.
그 시절의 나는 잘하고 싶었다.
어른이 되는 법을 잘 모르면서도,
어른인 척 굴며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이만 어른인 그냥 아직 어른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결혼을 선택한 게 아니라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 서른 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너무 애썼어.
결혼은 잘 살아보자고 시작하는 거지, 잘 보이려고 시작하는 게 아니야.”
"메리 넌 잘해왔고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