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던 나에게

#2 모두가 부러워했던 연애

by merry

모두가 부러워했던 연애였다.

정말 그랬다.

나조차도 그런 줄 알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서른 즈음, 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다.

사랑 하나면 모든 게 다 될 줄 알았고,

그 사람만 있으면 평생 외롭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런 시절,

나는 모두가 부러워했던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키 186cm의 훤칠한 키에

하얗고 말끔한 얼굴을 가진,

누가 봐도 멋진 남자였다.

(지극히 객관적인 내 생각이다)

그 시절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었고,

나보다 세 살 어린 대학생이었던 그는

어린 티가 살짝 나는 말투에도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내가 다니던 대학,

대학로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오래 머물렀던

그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파란 니트에 청바지, 파란 스니커즈를 신은 모습

첫 만남 때 꾸미지 않았는데도 왠지 모르게 멋져 보였다.


어색했던 첫 만남 이후, 우린 빠르게 가까워졌다.

매일 밤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잠들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대학생활이었기에

이런 소소한 연애조차 내겐 큰 행복이자

진짜 사랑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커플이었다.

“너무 잘 어울린다.”

“우와, 남자친구 진짜 잘생겼다!”

“키도 크고, 모델해도 되겠다.”

사람들의 그런 말들이 마치

내가 인정받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데도...

그와 함께 있을 땐

세상의 모든 시선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본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쓸데없는 자존감만 높아졌다.


그는 부드럽고, 애교도 많고,

때로는 철없었고, 때로는 진심이었다.

그의 단점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땐 몰랐다.


겉으로 예쁜 연애가 속까지 건강한 연애는 아니라는 걸.

보이는 사랑과 느껴지는 사랑은 완벽하게 다르다는 걸

나는 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자주 참고, 양보했다.

그가 기분이 나쁜 날엔 아무 잘못 한했는데도

괜히 내가 먼저 사과했고,

연락이 뜸해도 ‘바쁘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나를

그는 종종 피곤해하고 귀찮아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어울린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연애를 계속 이어갔다.


그보다 외모적으로 부족한 내가 그를 만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내가 더 잘나 보이는 착각도 했다.

"우와, 너 진짜 복 받았다.

그렇게 잘생긴 남자랑 예쁘게 연애하는 거 보면 부럽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들 속엔 내 깊은 외로움의

소리들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보여주는 데 능한 사람이었고,

나는 보이는 데 익숙한 여자였다.

우린 늘 함께 웃는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진을 찍기 직전 나는 늘 혼자 기다렸고

그는 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의 외모, 젊음, 말투, 존재 자체가

내겐 ‘운명’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십 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고,

나는 그를 중심으로 내 삶을 맞춰갔다.

식사 메뉴, 약속 시간, 데이트 장소,

모든 것이 그의 편의에 맞춰졌다.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을 받는 여자’라기보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여자’였다.

그가 나를 떠나지 않게 하려고 생각을 줄이고,

말조차 아끼며 나를 포장하고 그에게 맞추기 바빴다.


가끔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넌 행복해 보여서 좋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 요즘 정말 좋아.” 거짓말을 오래 하면

그게 진짜 같아진다.

나는 나 자신을 가스라이팅하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니까, 행복한 거야.

난 정말 지금 행복한 여자야”

나는 그 사람과의 연애를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했다.

그의 외모, 우리의 조화로움, 모두가 부러워했던

이 관계가 곧 내 행복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보이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느끼는 ‘내면의 평온함’이라는 걸.


그 사람과의 연애는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예뻐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조절했고,

무척이나 피곤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는 걸 돌이켜보니 알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예쁜 연애보다 나를 지켜주는 연애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나답게 보이는 편안한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