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처음부터 멀어진 거리
결혼은 두 집안이 하나 되는 일이라 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그저 겉모습만 맞춘 채 서 있었다.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 안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벽을 느꼈다.
우리 집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는 있었다.
결혼 준비 내내 상대 쪽 형편을 이해하려 했고,
상대 입장을 생각하는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그 집은 달랐다.
배려가 아닌 요구,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뿐이었다.
시어머니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시누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올케니까, 나이 상관없이 반말해도 돼.
넌 손윗사람이니까 존대는 계속하고.”
그 말이 끝나자,
나는 조금 당돌해 보일까 망설였지만 조용히 말했다.
“그럼 우리 둘 다 반말을 하든지, 아니면 둘 다 존대하는 게 어때요?”
시누는 금세 웃으며, “그럼 우리 둘 다 존대하자”라고 했지만,
시어머니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매번 낯선 언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되었고,
같은 상황에서도 나만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왜 그래야 했을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해 가는 게 결혼이라고 믿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시댁은 항상
나만 바뀌기를 바랐다.
내가 다 맞추기를 원했고,
정작 중요한 대소사 때는
나를 배제한 채,
그들만의 행사에
나는 들러리처럼 서 있었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나는 이 사람들과
진짜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결혼식 장소, 혼수, 예물, 하객 수, 예식장까지—
모든 기준은 ‘그쪽의 체면’이었다.
나는 그들의 틀에 맞춰야 했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요즘 시대에 왜
보여지는 것에만 치중해
쓸데없이 돈을 낭비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때면
조심스럽게 돌려서 말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항상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이방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나는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땐 모든 걸
내가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한 번은 이런 말도 들었다.
“며느리는 시집살이 좀 해야,
나중에 말이 안 나온다니까.”
이게 과연,
21세기에 있을 법한 사고방식인가?
그 말속엔 관계가 아닌 통제가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위계와 권위만 남아 있었다.
시댁 어른들을 처음 만난 날도 아직 기억난다.
딱딱한 말투,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느껴지는 권위의식,
묻지 않아도 전해지는
나와 우리 집의 형편을 평가하는 눈빛,
은근히 며느리의 태도를 점검하는 질문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뭐 그리 대단한 아들이라고
내가 그렇게까지 맞춰야 했을까.
내가 너무 맞췄던 것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집의 ‘가족’은
따뜻한 울타리가 아니라,
늘 조심해야 할 전선 같았다.
나에게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그저 ‘남편의 가족’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늘 ‘타인’이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집에서
이방인이자 외부인으로 시작했고,
결국 끝까지
그 경계를 넘지 못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우리는 처음부터 멀었다.
시작부터 힘듦이 보였기에,
언니와 엄마,
친한 친구들 모두
그렇게 말렸던 결혼이었다.
시작부터 어긋났던 신호들,
지금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그 적신호들이
그땐 왜 그렇게 흐릿했을까.
사랑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 모든 외면을 견딜 수 있다고 믿었을까?
왜, 나는 그때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