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결혼식, 나는 없었다
결혼식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하루는 시댁의 시골 동네에서, 하루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는 남들처럼 평범해 보이는 결혼식이었고,
다른 하루는 시아버지의 ‘부주용 이벤트’였다.
나는 몰랐다.
결혼식이 ‘행복의 선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돈 걷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결혼식을 이틀이나 해야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납득도, 설득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모든 게 그렇게 정해진 듯 흘러가고 있었다.
시댁 동네에서의 결혼식은
작은 시골 예식장을 빌려 치러졌다.
나는 입구에 서서, 마치 행사 도우미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억지로 웃었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나는 예식장 입구에 서 있었다.
힘들었다.
왜 결혼식을 두 번이나,
그것도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농번기인 5월, 시골은 너무 바빠서 도시까지 올라오기 어려우니
시골에서 한 번, 또 도시에서 한 번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결혼식이라기보다
그저 ‘보여주기’식 행사 같았다.
농사일하다 흙 묻은 장화 신은 채 오신 어르신들,
근처에서 일하다가 식사하러 온 분들 앞에서
시어른들과 예비 신랑과 함께 줄지어 들어오시는
처음 보는 그분들께 서서 억지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결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날, 나는 묻고 싶었다.
“정말 이런 결혼식을 꼭 해야 하는 걸까?”
둘째 날, 도시에서의 결혼식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호텔 대연회장, 수백 명의 하객,
그리고 나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들의 얼굴들.
다들 격식을 갖춰 차려입고 있는 모습으로 오셨다.
식장 한편에는 시아버지가 직접 준비한
커다란 부주함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결혼식이 ‘어른들이 살아온 세월의 부주 수금’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결혼이 아니라, 행사 그 자체였다.
더 속상했던 건
시어머니의 강압으로 인해
내가 고르고 싶었던 웨딩홀은 포기해야 했다는 점이다.
마치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지 돈을 걷기 위한 도구,
들러리처럼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속으로 몇 번이고 물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내 결혼이지만,
정작 나에겐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어느 순간,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피로하고,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신랑 측이든, 신부 측이든
모두 축하하러 온 자리였겠지만,
정작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원 원숭이처럼 신부대기실에 갇혀 있었다.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186cm의 누가 봐도 큰 키였다.
하지만 결혼식 날,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고 싶었는지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
나는 158cm인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의 그런 선택에도 나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는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난 그것을 너무 간과하고 넘어갔다.
예식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나는 웃는 얼굴로, 울고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다음 날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호텔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호텔 예식이라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지만,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그날, 엄마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의 품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 나에게 웃어보았지만
그 웃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구의 딸로,
누구의 며느리로,
누구의 신부로 서 있었을 뿐
‘나’로서 존재한 시간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사랑은 어디로 가버리고
‘체면’, ‘돈’, ‘행사’, ‘역할’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결심은 너무 늦게 찾아왔고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참고,
너무 많이 내어주고,
너무 멀리 와버린 뒤였다.
이제 와서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