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나의 신혼여행
신혼여행
나는 신혼여행만큼은
그동안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난 휴식이 필요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걷고,
숲이 많은 자연 속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가끔은 낮잠도 자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여유를 원했다.
하지만 내 의견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던 그는
당연하다는 듯 미국을 골랐고,
그의 누나와 함께
일정을 계획했다.
신혼여행은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모든 계획 속에서
나는 그저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선택한 건
하나도 없었다.
라스베이거스.
분명 화려하고 멋진 도시였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건물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
매일 열리는 쇼와 파티들.
처음 접하는 세상은 분명 흥미로웠고,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조용히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원했던 ‘쉼’은 없었고,
빡빡하게 짜인 일정 속에서
나는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곳만
따라다니는 역할이었다.
낮에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 관광지,
밤에는 호텔 카지노.
그는 룰렛에 푹 빠졌고,
신혼여행 중 이틀은
혼자 보내야 했다.
그가 밤새 카지노에서
홀린 사람처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호텔 방에서
불 꺼진 TV 앞에 앉아 있었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은 자꾸 멀어졌다.
‘이게 신혼여행이 맞는 걸까?’
속으로 되뇌던 그 질문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마지막 날,
우리는 LA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 수하물팀의 실수로
캐리어를 잃어버렸다.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고른 커플 신발과 옷,
신혼여행 동안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던 선물들이 들어 있었다.
이틀 뒤 다시 공항에 가서
캐리어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조차도 번거롭고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그때는 단순한 여행 사고쯤으로 넘겼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캐리어 분실 사건은
우리 결혼의 방향을
예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신혼여행에서 캐리어를 분실할 확률이
분명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신혼여행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결혼 생활에 대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신혼여행은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조금 더 확신하게 됐다.
이 결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모든 것이 나보다
그를 위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마음을 잠식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