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예의라고는 없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친정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예의’라는 이름 아래 신혼여행 후 첫 시댁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친정엄마와 나는 이바지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다.
정갈하게 포장된 반찬들과 작은 과일, 떡까지.
엄마는 손맛이 뛰어난 분이셨고, 나는 그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랐다.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그 집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는 거였다.
시어머니는 겉으로는 반가운 척했지만, 우리가 준비한 이바지 음식 앞에서는
감사도 감동도 없이, 마치 거래처에서 온 선물 세트를 받듯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정성 가득한 그 음식들이, 그 순간만큼은 투명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까지 함께 사라진 듯해서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내어준 건, 믹스커피 한 잔이 전부였다.
당황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식사 자리를 따로 차리는 것도 아니었고,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외식을 하자고 했다.
한정식집에서의 식사는 마치 형식적인 의례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돈만 있으면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식사처럼, 따뜻함 없는 대접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내 아버지께 반주를 권했다.
하... 친정아버지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신 분이었는데 말이다.
상견례 때도 그랬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없었다.
그 자리는 단지 ‘체면’만을 위한 자리처럼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어머니는 아버지께 대리비라며 현금을 건넸다.
그마저도 봉투 하나 없이 구겨진 오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체면을 중시하시는 분이, 왜 이런 식의 마무리를 택했을까.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은행 봉투 하나라도 준비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냥 ‘귀찮았던 것’일까. ‘예의’가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졌던 그 순간,
그 돈이 더 부담스럽고 무례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 요리를 잘하신다며? 괜히 우리 음식이 비교될까 봐, 그냥 나가서 사 먹는 게 낫지."
그 말은 변명이었고, 속보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단, 상대의 뛰어남을 회피하는 방식.
나는 그 진심 없는 태도에서 더 큰 거리감을 느꼈다.
그날은 누군가에겐 단지 ‘하나의 의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사랑으로 키워낸 딸을 처음으로 시댁에 데려가는 날이었고,
내 두 세계가 만나는 첫 교차점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 부모가 받은 태도는, 곧 나를 향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적잖이 화가 났고, 무엇보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두 세계가 결코 하나로 섞이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