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아와 관계의 균열 - 사라진 나를 찾으며

먼저 와버린 너, 아직 준비가 덜된 나

by merry

아들과의 첫 만남은 참 힘들었다.

내가 열 달을 품고 낳은 아이였지만, 그 시간이 채워지기도 전에 아들은 세상에 나왔다.

불어나는 내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걸 느꼈는지,

아들은 마치

“엄마 힘드니까 내가 먼저 나갈게”

하듯 서둘러 나왔다.


외로워 보였던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걸까.

아들은 36주 2일, 예정일보다 일찍,

그렇게 내 품에 안겼다.

아들은 또래보다 머리가 컸고,

나는 또래 산모들보다 골반이 작았다.

그 탓에 출산은 남들보다 더 험난했고,

내 의무기록엔 ‘과한 열상환자’라는 이름이 남았다.


“다시 임신하겠냐”는 질문엔 단호히 대답한다.

절대 안 한다.

임신중독, 열상, 맥도날드 수술…

남들처럼 평범하고 아름다운 임신과 출산을 기대했건만,

나는 참 유별나게 겪어냈다.


세상에 내 도플갱어 같은 아이 하나 남기는 과정이

이렇게 치열하고 처절할 줄은, 그땐 몰랐다.

나에게 출산은 아름다움보다는

몸도, 마음도 다 무너져내리는 붕괴과정 같았다.


만약 누가 미리 “이렇게 힘들 거야”라고 알려줬다면

나는 아마 딩크족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출산이 이렇게 힘들었다면,

육아는 조금은 쉬울까 했지만,

아니었다.


고립의 시작, 메르스라는 이름의 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5년 6월.

대한민국 대구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의 공포 속에 잠겨 있었다.

내가 출산한 대학병원은 메르스 거점병원이었고,

그 이유 하나로

예약해 두었던 산후조리원은 나와 아들의 입소를 거절했다.

미리예약해 두었던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한 달은 더 있어야 가능하다”며 오지 못했다.

아들을 낳고 단 일주일 뒤는

내 남동생의 결혼식.

모두가 분주하고,

오롯이 나만 혼자였다.


나는 아이를 품고도,

세상과 함께하지 못했다.

마치 세상이 나와 아들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출산 후 1인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다음 날 병실을 다인실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간호사실에 그렇게 이야기했단다


“자연분만했는데 뭘 그렇게 유난 떠느냐”라고.


나는 또 멍청하게도

말없이 짐을 챙겨 다인실로 이동했다.

내가 조금 편하게 쉬는 게 그녀는 싫었던 걸까?

자기 아들이 벌어온 돈을 쓴다고 생각해서 아끼려고 했던 걸까?

만약 내가 그녀의 딸이었다면 오히려 1인실이 아니라

특실에 유난 떨었을 그 ex시어머니가

그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던 내가

지금 생각하니 웃프다




그렇게 2박 3일을 견디고

갓 태어난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기저귀는 언제 갈아야 할지,

얼굴이 노란데 내 눈이 이상한 건지,

왜 울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황달이었다.


배꼽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를 씻기는 일도

내겐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아들은 너무 빨리 세상에 나와 있었다.



출산이 이렇게 어렵고,

축하받기는커녕 고립되고,

이해는커녕 눈치 주는 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결혼 생활이 슬프고 험난할 것이라는

예감을 무의식 속에서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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