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엄마가 되어준 또 한 사람, 내 엄마
아들의 엄마가 되어준 또 한 사람, 내 엄마
아이를 낳고,
나는 내 엄마에게 ‘엄마의 자리’를 부탁했다.
이번엔 내 아들의 ‘할머니’가 아니라,
또 다른 엄마로 살아야 했던 내 엄마.
내 아들의 '할 엄마'가 되어
아이를 안고, 먹이고, 울리고, 재우며
엄마는 자신의 삶을 잠시 멈췄다.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아이 하나를 위해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냈다.
그 시간이 하루, 이틀, 한 달…
어느새 11년이라는 시간으로 쌓였다.
항상 고맙고, 또 항상 미안하다.
이 두 감정은 단 한순간도 내 마음을 떠난 적 없다.
엄마는 나보다 먼저
아이의 옹알이를 들었고,
아이의 첫걸음을 봤고,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구구단, 한글 공부,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었다.
“애 키우는 건 네 엄마가 하잖아.”
참 쉽게 말했다.
마치 당연한 일처럼...
내 부모가 너의 책임까지 떠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시어머니도 처음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엄만데, 네가 해야지.
집에서 육아하는 건 어때?”
그러다 나중엔,
내가 나가서 일하게 되자,
친정엄마께 수고비 얼마 드리는지도 당신 아들을 통해 알아봤고,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백만 원도 크다면 큰돈인데,
그만큼 받으시니까 아이 봐주셔도 되지.”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어이가 없었다.
화도 났다. 그래서 말했다.
“그럼 150만 원 드릴 테니, 어머니가 좀 봐주세요.”
그랬더니 “난 바빠서 못해, 가끔은 나도 아들 봐줄게”라고 하셨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유식 한 번, 병원 한 번
같이 가준 적 한 번도 없었다.
“친정 엄마가 키우면 정이 안 들어”라던 그녀는
그 어떤 정성도 손주에게 주려 하지 않았다.
가끔 용돈이라며
돌 지난 아이 손에 오만 원짜리 한 장 쥐어주는 것,
그게 다였다.
정말, 본인들의 손주인데…
그 모든 육아는
우리 부모님이 해야 했고,
남편도 시어머니도 단 한 번도 ‘육아의 주체’로 나선 적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아들, 내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들의 육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일과 취미생활에만 몰두했고,
아이는 오롯이 친정엄마와 나의 몫이었다.
내가 자주 좀 집에 오라고 하자,
“멀어서… 차가 없어서 못 가”라더라.
그래서,
그 당시 그의 벌이에 맞지 않는 고급 세단을 사줬다.
나는 10년 된 경차를 타고 있었고,
그는 새 대형 세단을 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하지만 그땐 그가 아이의 아빠니까…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줄 알았다.
그에게 차를 뽑아줬을 땐,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 고생했네~ 잘 샀다, 잘 샀어.”
그 말이 내 가슴을 콕 찔렀다.
나는 부모님께 아들을 맡기고,
밤낮없이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차였는데…
그걸 두고도 “우리 아들 고생했네”라니...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 거다.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나는 이 결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걸지도.
나는 일했고,
아들을 위해 돈을 벌었고,
엄마로, 아빠로 살아야 했다.
가끔은
아이의 마음이 외할머니에게 더 기댈 때,
질투가 났다.
미안했고,
속상했고,
그러면서도 고마웠다.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느 새벽, 정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엄마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섰고,
그 시간 동안 남편이라는 사람은
책임을 회피했다.
무언가 힘든 일이 닥치면 피했고,
내가 의논하려 하면 회피했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
다시 육아를 시작하는 게
어쩌면 익숙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나이에, 그 체력으로
다시 갓난아기를 키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시댁과 그 사람...
돌이켜보면 묻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이,
왜 우리 부모는 이유 없는 희생을 해야 했고 왜 당신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