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들, 아들의 병실에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픈 아들, 아들의 병실에 아빠는 오지 않았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한참 놀고, 뛰어다니고,
세상이 온통 신기해 보이던 시기.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엄마, 오늘 진짜 재밌었어!”
하며 웃더니 그대로 픽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가 몸을 후끈 달구며 앓기 시작했다.
체온계는 39.8도를 가리켰고,
아이는 몸을 떨며 끙끙거렸다.
나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아이를 꼭 안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 시간, 새벽 2시
결국 아이는 독감 확진을 받았고,
일주일간의 입원이 결정됐다.
그날부터 병원에서의 전쟁이 시작됐다.
1인실을 써야만 했다.
병원에서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에서 간호사로, 다시 직장인으로 변했다.
아침엔 아이 곁에 있다가,
아이가 아침 먹는 걸 보고 출근하고,
퇴근 후엔 병원으로 다시 달려와 밤을 지새우고. 그런데 그 일주일 동안,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
아니 아이에게 전화 한 통 없었다...
내가 아이가 아프다고, 입원했다고,
열이 너무 심하다고 몇 번이나 연락을 했는데도 그는 “요즘 일이 많다”며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 다 혼자 하는냥 구는데
그 모습이 점점 우습게 느껴졌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섭섭한 마음을 장문의 글로 남기면
문자에는 짧은 “알았어”만 남겼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병문안을 왔지만 그것도 잠깐.
그저 ‘의무적으로 얼굴만 보러 온’ 느낌이었다.
“잘 있네~ 얼른 낫자~” 그 말 한마디,
그리고 어김없이 손에 들린 돈봉투 하나.
그러고 나서 그들은,
마치 ‘할 일을 끝낸 사람들’처럼 돌아갔다.
정말이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그들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다.
그때 병실엔, 오직 나와 친정엄마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1인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아이를 바라보며 그 작은 몸에 물수건을 올렸다 내렸다 하셨고,
나는 퇴근 후, 피곤에 절어 병원으로 다시 달려와 아들과 함께 잠들었다.
그렇게 ‘아빠가 사라진 병실’에서
엄마와 나, 우리 둘은 아이에게 엄마이자 아빠가 되어야 했다.
엄마는 아들의 ‘할머니’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두 번째 엄마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병실 화장실에 숨어 조용히 울었다. 아이의 눈이 내 눈물을 볼까 봐,
엄마가 내 마음을 눈치챌까 봐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며,
나는 세면대에 기대 혼잣말을 뱉었다.
“나는… 왜 이 결혼을 강행했을까?”
사랑해서?
책임지고 싶어서?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 모든 이유가 지금 병원 복도 위에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들의 열은 내려갔지만,
내 마음속 온도는 그날 이후로 영하로 내려갔다.
그가 연락도 없고
병실에 오지 않았던 그 일주일이
내가 이 결혼에 끝을 내야 한다고
마음먹은 날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