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아와 관계의 균열 -사라진 나를 찾으며

우리가 부부였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by merry

아이를 낳으면 부부는 더 끈끈해질 줄 알았다.
같은 생명을 품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니
더 단단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부부”가 아닌, 각각의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엄마”이자 “아빠”가 되어 살아가게 된 거였다.

하루하루 아이의 일상을 친정엄마와 공유하고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쉬는 날조차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다.
아이를 위한 하루, 아이만을 위한 삶.
일과 집, 육아의 무한 반복 속에서
내 일상은, 내 이름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아이를 위한 소소한 관심도,
다정한 눈빛도, 함께하는 마음도 없었다.

더 황당한 건,
내가 그의 역할까지 다 해내고 있음에도
그는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감정은 서서히 사라졌고
서로를 챙기던 마음은
육아라는 거대한 책임 앞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나는 아이에게 휘둘리고
그는 일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버렸다.
우리는 점점,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잃어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와 나 사이엔 무언의 벽이 생겼다.
그땐 왜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몰랐다.

한 달에 한 번,
그는 집에 잠시 들렀지만 하루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것을 보지 않았고
함께 앉아 있어도
마음은 서로를 향하지 않았다.

“왜 나만 부모지?”
“나는 미혼모인가?”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갔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왜 나는 늘 지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을까.

함께 미래를 그리던 대화는 사라졌고
오늘을 간신히 버티는 말들만 남았다.
사랑은, 그렇게 천천히 사라졌다.

그 어떤 폭력도 없었다.
그는 그저,
나에게 무관심했을 뿐이었다.

차라리 폭력이라도 있었다면,
아니면 명백한 부당함이라도 있었다면
헤어지는 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연락이 잘 안 되고
가끔 나타나는 것만으로는
명확한 이혼 사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을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이 관계의 가장 큰 덫이었다.

그의 무심한 태도와,
아이에게 무관한 삶의 방식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건 공식적인 서류보다 훨씬 더 깊은
감정의 파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