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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chloemas Feb 02. 2021

드라마 리뷰/런 온(RUN ON)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외치는 드라마

요즘 아주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있는데, 손에 꼽히는 명작이 될 것 같아서 이번 주 마지막 방송 전에 리뷰를 남겨본다. 가끔 이상한 상상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상상 장면들이 나올 때는 몰입이 깨진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좋은 것은 바로 대사. 멜로가 체질 이후로 오랜만에 또 대사 한 줄 한 줄에 깊은 감명을 받아 리뷰를 쓰고 싶어 졌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주옥같은 대사들을 쓰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큰 소망과 함께.


출처_네이버 검색



신세경, 임시완 주연의 드라마 <런 온>이 바로 오늘 리뷰의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는 배우 신세경에게 확실하게 입덕 하게 만든 드라마라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신세경 출연작 중, <흑기사>와 <하백의 신부 2017>을 보고 나서 신세경이라는 배우에게 조금씩 빠져들었는데, 이번 <런 온>에서 맡은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라 확실히 '아, 나 이 배우 좋아.'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줬다. 물론 정확히는 캐릭터가 좋은 것이겠지만, 그것을 잘 연기해내는 배우 덕분에 내가 제대로 캐릭터를 만났으리라 생각한다.


<런 온>에서 신세경이 맡은 역할은 번역가 오미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언니,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여자 친구 등 누군가에게 소속된 인물이 아니라, '나 자신'만으로도 꼿꼿하게 당당하게 서 있으려고 하는 인물이다. 평소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라 드라마 속 미주를 응원하며 지켜보게 되었다. 미주는 말 그대로 혈혈단신 혼자다. 그나마 의지할 곳이라고는 현 동거인이자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 언니가 유일하다. 심적으로나 일적으로나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고, 미주가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마다 답정너인 미주에게 원하는 곳으로 더 확실히 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미주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미주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인물, 육상 선수 기선겸이 등장한다. 기선겸이 바로 예상하는 남주인공 임시완이다. 임시완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자란, 게다가 미모까지 뛰어난, 하지만 만년 2등인 육상 선수이다. 이것도 너무 클리셰적인 설정인데, 미주가 굉장히 외롭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과 달리, 남자 주인공은 아주 훌륭한 환경에서 자랐다. 국회의원 아버지, 국민 탑배우 어머니, 세계적인 골프선수 누나가 있는 빵빵한 배경의 집에서 자랐고,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맘대로 못하는 운동도, 언제든 문제가 터지면 짠하고 나타나서 해결해주는 에이전시까지 갖추고 하고 있다. 에이전시 덕분에 육상 선수로는 처음으로(극 중에서는 처음이라고 나온다) 의류 모델이며, 여러 가지 광고 모델로 활동하기도 한다. 딱 봐도 금수저에 잘난 캐릭터. 근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겉으로 보기에만'이다.


기선겸은 늘 아버지의 소유물로서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보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았고, 창던지기하다 팔이 다쳤으니 달리기를 하라던 아버지 말대로 육상 선수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보다는 상대방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개념도 싸가지도 밥 말아먹은 듯한 캐릭터로 보였으나, 알고 보면 영혼이 털린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의 인생을 '내 인생'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서툴고, 표현하는 것에 서투른 사람이다. 그런 선겸이 미주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주가 선겸에게 툭툭 내뱉는 말들은 사실은 인생의 진리 같은 것들이다. 또, 이런 장면들에서 명대사가 많이 등장했다. 미주와 선겸이 큰 감정 변화 없이(실제로 없다기보다는 말투의 톤&매너에 큰 변화가 없다) 티키타카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재미있고, 왠지 모를 쾌감을 준다. 난 말 잘하는 사람들이 좋더라! (내가 못해서 그런가ㅎㅎㅎ) 몇 개의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랑 대사들을 가져와봤다.




<4화 제주도에서 '배고플 때 탕' 먹으며>

이때 하는 대화들은 다 좋다. 사실 이때 하는 모든 대화가 다 좋지만, 이게 진짜 대사인지 애드립인지 싶은 정도의 감칠맛 나는 대사들이 재밌었던 장면이다.

출처_네이버 검색


미주 옘병.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게 김칫국인지 오분자기인지.

선겸 오분자기에요.

미주 아! 혼잣말이잖아요. 왜 대답해요.

선겸 아... 혼잣말을 그렇게 들리게 해요?



출처_네이버 검색

<4화 미주에게 후배 통역을 부탁하는 선겸>

선겸 월권인 거 압니다. 제가 지금 오미주 씨한테 하는 거요. 피해주기 싫어서 이러는 거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미주 내가 볼 피해를 왜 걱정해요? 자기 코가 석자면서.

선겸 우리 아버지요. 저는 자식새끼라서 뼘 한대 내주고 넘어갔다 쳐요. 근데 오미주 씨는 생판 남이잖아요. 근데 제가 걱정하면 안 되나요?

미주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왜 본인이 하는 걱정에 본인만 없는데. 그쪽 보고 있으면 꼭 뭐 같은지 알아요?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 고통에 괜찮아질 때까지 익숙해진 사람이요. 그래서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죠.

선겸 오미주 씨한테는 남일이어야 합니다. 이건 제 일이에요.

미주 이제부터는 내 일이기도 하죠. 여기 지금 나 말고 통역할 수 있는 사람 누가 있어요. 기선겸 씨 이름 앞에 타이틀로 불리는 거 익숙하다고 했죠? 화풀이로 사람 때리는 쓰레기, 뭐 이런 것도 익숙해질라고요? 괜찮아질 때까지?

선겸 괜찮아야죠. 그것까지 각오 안 했을까요. 원래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관심도 없었고, 제 이야기는 할 필요 없어요. 중요하지도 않고요.

미주 뭔 개소리예요. 난 당신 이야기가 젤 중요한데. 진짜 대중들한테 피투성이 되고 싶어서 이래요? 세상이 다정해? 앞으로도 그런 소리 계속하고 싶으면 나한테 그딴 오더 주지 마요. 절대 못 들어주니까. 돈만 많으면 단 줄 아나 봐 진짜. 통역은 내가 알아서 주워 섬길거에요. 본인 좀 소중하게 좀 대해주세요.



출처_네이버 검색

<4화 통역 후 미주에게 질문하는 선겸>

선겸 잠시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미주 뭔데요?

선겸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잘 모르겠어서 묻는 거니까. 혹시 나 좋아하나요? 아까부터 나한테 했던 말들이 다 고백같이 들려서요. 제 착각인가요?

미주 암만 뭘 잘 몰라도 이렇게 막 묻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좋아해요. 이런 게 진짜 고백이죠. 내가 한 모든 말들이 다 고백이길 바라는 게 아니면. 혹시 내가 착각하게 했어요?

선겸 내 착각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미주 이런 상황에도 내 기분을 챙기네. 모든 말이 다 고백은 아니었어요. 그중에 고백이 있었으면 몰라도.



출처_네이버 검색

<5화 우식이의 계획으로 밥 먹으러 만난 선겸과 미주>

미주 그거 딱 기선겸 씨 맞네. 특히 몸빵.

선겸 저는 실패했죠. 아무것도 못 해냈으니까요.

미주 왜 실패를 과정 안에 안 껴주지? 실패하는 것도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포함을 시켜줘야죠. 제리 맥과이어도 바닥까지 치고 다시 올라왔잖아요.



출처_네이버 검색

<5화 기사를 확인한 후 미주 집에 찾아온 선겸>

미주 진짜 모르는 거 너무 많다. 그쪽은 세상천지 다 위하고 다니면서, 그 착한 우식 씨가 그쪽 위할 줄은 몰랐어요? 고통에 익숙한 사람, 잘 견디는 게 디폴트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괜찮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혹시 하고 있다면. 일단 이쪽으로 좀 옵시다. 얼른. (비 맞는 선겸을 끌어당겨서 안아준다)

미주 (선겸을 토닥이며) 이것도 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선겸 알아요. 위로.

미주 (웃으며) 정답.



출처_네이버 검색

<9화 미주에게 러닝화 선물하는 선겸>

미주 아니 근데 갑자기 웬 선물이에요?

선겸 그동안 신세 많이 져서.

미주 네??

선겸 짐은 미리 다 빼뒀어요. 청소랑 빨래도 다 해놨고, 집에는 그냥 들어가서 쉬면 돼요.

미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얘기를 왜 지금 하는 거예요? 우리 며칠 동안 같이 있었잖아요.

선겸 아 타이밍 봐서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오미주 씨 촬영 일정 끝나면 알려주려고요.

미주 아 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서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렇죠.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한 번씩 이렇게 뭔가 그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선 긋는다는 표현 거북해했던 것 같아서, 뭔가 그인다고 표현한 거예요. 나 화내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요.

선겸 내가 분명히 안긋는다고 얘기했잖아요.

미주 근데 나는 왜 보이지도 않는 선 밖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지금?

선겸 나는 오미주 씨가 긋지도 않은 선 밖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주 나도 그러고 싶어요.

선겸 내가 재미없어졌으면 그냥 그렇다고 말을 해줘요.

미주 기선겸 씨랑 있으면 결정적인 부분에서 꼭 소외당하는 기분 들 때가 있어서 그래서 그래요. 소외감이라는 게 혼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니까. 아 진짜 싫다.

-

미주 나 기선겸 씨 싫다고 한 거 아니에요. 내가 너무 찌질한 소리를 하는 거 같아서 그거 싫다고 한 거예요. 나 싫어하지 마요.

선겸 나 안 싫어해요. 나 계속 그거 하고 있어요. 좋아해 달라면서요.

미주 그거 나 부탁한 거 아니었는데. 용기 낸 거였는데.

 


출처_네이버 검색

<10화 미주와 선겸, 서로 고백하는 장면>

선겸 어제 제리 맥과이어 영화 봤어요.

미주 재미있었어요?

선겸 재미없었어요. 근데 따뜻했어요. 왜인지 생각해보니까 그 영화를 이야기해주는 오미주 씨가 따뜻했더라고요.

미주 영화는 어땠어요?

선겸 주인공은 갑자기 고꾸라진 자기를 못 견뎌하더라고요. 유일하게 남은 사람에게도 상처 주고. 그러다 뒤늦게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근데 문득 그게 내 모습은 아닌가. 우리 관계가 끝나는 게 무서웠어요. 계속 이어질수록. 나는 오미주 씨가 좋아해 줄 때나 의미 있고 소중하죠. 근데 그 오미주 씨의 감정이 연애 감정은 맞나? 오미주 씨도 나랑 손잡고 싶을까? 앉고 싶을까? 입 맞추고 싶을까? 그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그런데. 나 싫어하지 마요.

미주 왜 이렇게 두서가 없어요.

선겸 그랬어요? 미안해요.

-

미주 (입맞춤 후) 이게 내 대답

선겸 그럼 나 계속해도 되는 거예요?

미주 뭐요? 좋아해 주는 거?

선겸 아니요. 좋아하는 거!

미주 하지 말라면 안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선겸 아니요. 할래요. 하고 싶어요!

미주 해요. 시켜준다 내가!

선겸 진짜요?

미주 나 사실 걱정 많이 했거든요. 기선겸 씨 그날 상처 받았을까 봐. 난 한 달짜리 하기 싫어요. 나 혼자서는 못하니까 좀 도와줘요. 이유 없이도 잘 돕잖아요. 이유까지 있으면 얼마나 잘 돕겠어.

선겸 노력할게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뜬금없이 밥 먹는 장면이 나와서 정말 황당했다^^; PPL인가. 아무튼 배고플 거죠? 배고파야죠.라는 이 어이없는 대화도 애드립같지만 미주와 선겸이도 어이없었겠지 하며 넘어갔다. 아름다운 대화 후에 오는 이상한 공복 타이밍에 대화도 없이 알탕을 먹어야 하는 장면이라니...? 이건 너무해!





사실 조금 뻔한 전개다. (그 와중에도 명장면, 명언들은 있지만ㅎㅎㅎ) 서로에게 대한 마음은 계속 커지는데 자꾸 오해할만한 상황들이 생기고, 또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오해를 풀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하고 끝나면 좋겠지만, 그때부터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된다. 서로의 마음을 깨닫는 순간, 둘의 사이가 단단하고 견고해지기도 부족한 시간에, 꼭 둘 사이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주로 둘 사이를 반대하는 부모님이거나, 구 남자 친구 구 여자 친구이거나, 짝사랑하는 사람들이거나, 라이벌이거나 등등. 여기서는 반대하는 부모님이 등장한다. 평생을 선겸이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자라게 한 것도 모자라, 결혼까지도 정해주는 짝과 해야 한다며 아들에게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하고, 아들과 만나는 여자에게는 돈을 주며 떨어져 나가라고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집 앞까지 찾아와 손찌검을 하기 직전까지 협박한다.


그때 미주는 '내가 어때서. 나 나름 잘 살아왔는데. 내가 더 소중해서.'라는 말로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다시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선겸에게 실수할지도 모르니 만나지 말자고 했었는데, 실수라고 했던 바로 그것은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웃프게도 결국 '헤어지자'라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선겸. 결국 미주는 선겸의 입을 빌려서 헤어지자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선겸은 예의를 지키라며, 시간을 갖자고 했다. 이 장면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언제든 자신을 지키는 미주의 태도가 부러웠고, 두 번째는 예전과 다르게 변한 선겸의 모습이 놀라웠다.


첫 번째를 먼저 말하자면, 선겸에게는 미주가 비겁하게 보였을 몰라도 나는 한 번도 선택해보지 못한 태도라 부러웠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실하지만,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 비겁해지는 것이다. 상대에게 나는 나쁜 사람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평생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선택 같다. 그래서 내가 가장 후회하는 연애의 순간이 있는데, 미주랑 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는데도,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하지 못했었다. 그 결과, 잠시 동안 평화로운 것처럼 보였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갔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무조건 나 자신을 선택했을 것 같다. 나를 포기하는 순간, 모든 관계는 결국 위태로워지는 것 같다.


두 번째로 예전과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선겸의 모습이 기특했다. 미주의 말에 '그래.'하고 바로 수긍하고 끝냈다면, 또다시 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오해의 늪에 빠져 다시는 사랑할 수 없었겠지. 그러나, 미주를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선겸은 심지어 '헤어지는 법은 알려주지 말라.'라고 표현하기에 이른다. 아주 훌륭한 학생이다. 그렇지, 배운 것은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다른 것은 다 알려줘도 그거 하나는 알려주지 말라며, 백허그를 하고 엉엉 울며, 자신을 좋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바로 미주의 마음은 무장해제. (여담인데, 임시완이 저렇게 울면 누구라도 그냥 뭐 다 해주고 싶을 듯.ㅎㅎㅎ)


화해한 이후로 하는 대화도 너무 좋았다. 이 드라마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다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었던 장면. 집은 원래 갑자기 비는 거라며, 라면 먹고 가라는 미주의 말에 둘은 집으로 들어간다. 미주와 선겸은 미주의 침대에 설레는 표정으로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선겸 나는 생각해보니까, 이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오미주 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주 나랑 평생 같이 살아야 되는 게 누구예요?.... 나 자신. 그러니까 나 자신을 잘 보살펴주고, 깨지면 보수도 잘해주고 그래야겠죠? 나는, 나랑 제일 잘 지내고 싶거든요. 나를 과잉으로 사랑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학대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균형을 잘 맞춰가는 게 내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기선겸씨도 스스로를 좀 더 사랑했으면 해서. 그래야 우리 건강하게 오래 만나지.

선겸 그럴게요. 노력할게요.






유독 '나, 자신, 스스로'라는 대사가 많았던 드라마.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미주와 스스로를 챙길 줄 모르던 선겸이 만나, '나를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대사들.


정말 제대로 번아웃이 와서 그런지, 몰입이 깨진 이후로 한 달 동안은 계속 넋이 나가 있었던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대사들이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거을 알기에 늘 나도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강조하고 되새기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잊고 지내며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아껴주지 못하고 지나치게 학대하고 있었더라. 마침 이 힘든 타이밍에 이 드라마가 나에게 찾아와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챙겨보았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챙겨보는 드라마보다 이렇게 나 홀로 챙겨보는 것 같은 드라마 중에 명작이 있다면, 세상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언제고 힘이 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무기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대사들을 자세히 들여보다면, 처음에 미주가 했던 말들을 어느새 선겸이가 하고 있다. 미주가 변한 걸까? 선겸이가 성장한 걸까? 난 미주를 통해 선겸이가 성장했고, 그런 선겸이를 보며 미주는 다시 또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제목이 RUN ON인데, '계속되다'라는 의미이다. 드라마 제목처럼, 미주와 선겸이의 관계는 계속될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달리다 보면 우리는 다들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성장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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