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일, 직업, 경력에 대한 성찰일기
내 나이 서른셋, 지금쯤이면 아주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선택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습일 텐데, 과연 나는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가족, 친구, 사회 등 누가 되었든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아왔다는 생각이 피어올랐고, 답을 내릴 때까지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의 선택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결정 들이었는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 깊게 들여볼 시간이 생겼기 때문에. 사실은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무직인 상태로. 때로는 프리랜서라고 나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사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요즘의 나의 일상은 그저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 들여다보는 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머리도 마음도 몸도 너무 바쁘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불안함보다는 이 시간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100살까지 사는 요즘 세상에 나는 아직 내 인생의 3분의 1 정도밖에 살지 않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삶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학창 시절 그리고 20대 초반까지 내가 생각했던 아주 멋진 어른이란, 프로페셔널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이었다. 맡은 일들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는 능력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일 경험들은 늘 예상 밖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선택한 일에 열심히 몰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해 온 일들을 쭉 들여다보니, 커리어를 좀 더 관리하면서 지나왔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좀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를 꼽자면, '경력 관리'이다. 그냥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면 나의 커리어가 잘 쌓이고 관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멈춰보니 아니었다. 경력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챙겨야 할 대상이더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믿고 싶은 요즘, 지금이라도 나의 경력들을 잘 관리해서 좀 더 내가 꿈꾸던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난 어렸을 때부터 꿈이 꽤 명확했다. 중학교 3학년(무려 17년 전 기록이라니 놀랍다) 때 쓴 다이어리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 쓴 다이어리에 내가 가고 싶었던, 그리고 실제로 내가 입학한 학교의 로고가 떡하니 붙어있다. 학교만 정한 게 아니라 심지어 전공도 미리 생각해두었다. 중학생 치고는 꿈에 대해 야무지게 고민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로 인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아 이게 내가 앞으로 갈길이다 라고 생각했다. 정말 사소한 계기였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냥 가족들이 부탁한 작은 심부름을 해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꿈이 될 수 있냐 싶은데, 오히려 그때는 지금보다 순수했을 때이니까 그 작은 감정이 당시에는 나에게 굉장히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답을 찾았다.
파티를 열어주자! 파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파티는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는 거니까.
파티를 열어 누군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할 것 같아.
그렇다면 파티플래너가 되어야겠어.
그 이후 나는 꿈을 조금씩 구체화시켜 나갔다. 파티플래너가 되기 위해서 어떤 전공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봤다. 그런데 파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과는 거의 없었다. 최대한 비슷한 일을 찾다 보니 컨벤션(MICE) 산업을 알게 되었고, 컨벤션 산업은 어느새 관광산업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관광산업의 특성상 서비스 요소가 많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일'은 서비스업과 일맥상통했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여행도 좋아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것도 너무 즐거웠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관광산업은 자연스럽게 나의 꿈이 되었다. 일하듯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하는 삶을 꿈꿨다. 관광산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광을 전공으로 학교에 입학하지는 못했다. 합격한 학교 중 관광학과가 있고 전과나 복수전공이 가능한 학교(다행히 다이어리에 로고까지 붙여 두었던 바로 그 학교)를 선택해서 입학했다. 그래서 졸업이 늦어지는데도 굳이 관광경영학과 복수전공을 선택해 이수했다. 복수전공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수업도 듣고, 팀플도 하고, 과제도 하고, 시험도 봐야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졸업 후 나는 무조건 관광산업으로 취업하고 싶었고, 그럴 거라고 기대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정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취준생'이라는 말도 너무 싫었다. 대체 얼마나 어렵길래 대학 내내 공부하고 활동하며 경험을 쌓아왔는데 또 준비를 해야 한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의 문턱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고,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그저 좋아하는 일 찾아서 잘하고 적당히 돈도 벌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엔 연봉이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고, 그렇다고 보상만 따지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특히나 더더욱 취업이 어렵다는 문과. 경상계열 전공도 아니라 더 막막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교양 수업보다는 전공 수업을 훨씬 재밌게 들었기에 전공들을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우리는 점수로 한 번 걸러지고, 시험으로 한 번 걸러지고, 또 면접으로도 걸러진 후에야 회사라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내가 진짜 원하는 회사일지는 미지수. 이제 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솔직히 나는 취업시장에서 정해진 룰대로 준비해서 취업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그 과정을 준비했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다. 자소서를 잘 쓰기 위해서, 인적성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또 면접을 잘 보기 위해서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을까? 너무 부끄럽지만 어떤 과정에서도 나는 이것만큼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과연 이 세상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인지 의문과 불안감이 커질 때쯤, 한 여행사(꽤 유명한)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봤다. 당시에는 신입이다 보니 이렇다 할 경력도 없었기에 나라는 사람 자체와 그동안 해왔던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 경험들로 나를 소개했다. 면접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면접의 분위기로 안 좋은 결과를 예감했다. 역시나 슬프게도 결과는 탈락. 그런데 그 회사에서 얼마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취업을 포기한 사람이 있고, 다시 티오가 생겼기에 입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다만, 내가 원하는 팀은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결국은 입사를 선택했다. 그게 어떤 길이고 어떤 시작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 첫 직장에서의 경험과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며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