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대한 단상

<홍학의 자리>를 읽고

by Merrychloemas

*참고 ⎮ 결말과 내용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뇌리에 깊게 남을만한 소설을 읽었다. 바로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만큼 재미있다'라는 평을 들어 더 기대했던 작품이다. 나 역시 한 번에 후루룩 읽을 만큼 몰입도 있는 이야기였고, 특히나 마지막에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있어서 더 인상 깊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선생님과 제자 사이의 불륜, 살인 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해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고, 정해연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는데 뭐랄까 문장이 길지 않아 읽기 쉽다고 해야 할까. 소설이지만 쓸데없는 미사여구 없이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는 글이었다.


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내가 이렇게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인공의 불륜 상대는 여학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채다현이 남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정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여학생이라고 착각하게 만들만한 문구가 없었는지 살펴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어떤 문장에도 채다현이 '여자'라고 생각할만한 표현은 없었다.


예전에 비해 동성애에 대해서 사회가 많이 유연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반대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동성애는 금기시되는 것이라고 배우고 자라왔기 때문에 인간 대 인간의 사랑보다는 남녀 간의 사랑에 더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남자 선생님과의 관계를 가질 학생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나름대로 해왔던 편견 없이 살아보려고 했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름대로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어떤 고정관념과 편견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편견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더 공적인 부분인 것 같다. 편견은 어떤 대상에 대한 한쪽으로 치우진 생각이고, 그 생각은 보통 오롯이 개인의 기준보다는 사회적인 시선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학의 자리> 마지막에 반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다 편견에서 오는 반전이라 다른 소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반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범인이 아니었다든가 착한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복수를 위해 꾸민 일이었다든가 하는 그런 류의 반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채다현이 꼭 남학생이라는 설정이 아니었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동성애가 아니었다면 덜 극적으로 느껴지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중요한 반전과 별개로 주인공 이준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 없이 쾌락만 즐기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었다. 보통 이야기의 주인공은 밉상인 부분은 있어도 결국은 응원하게 되는 캐릭터들이었는데, 이준후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싫어지는 인물이었다. 한 번도 나서서 누군가를 해치려고 한 적은 없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순간마다 늘 뒷걸음질 치며 도망갔던 쓰레기 같은 인간.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편견을 깨는 부분이었다고 할까.


작가는 <홍학의 자리>가 인정욕구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편견에 대한 자각을 하게 해주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논란이 될만한 요소가 많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반전을 느낄지, 또 어떤 편견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wavve 오리지널 드라마 리뷰/트레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