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목적 없는 여행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2년 전,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초밥 뷔페를 갈 때마다 생각나는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포르투갈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빌라 헤알(Vila Real). 이름도 생소한 그 도시는 왜 하필 나에게 초밥 뷔페의 도시가 되었을까? 무계획으로 떠난 자동차 여행에서 우연히 가게 된 식당이었다. 엄청난 맛집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평생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도시를 가보게 되었으니 조금은 특별하다고 해두고 싶다.
2023년 3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꿈에 그리던 포르투갈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일주일이 조금 넘는 길지 않은 여행이라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싶었던 우리는 매일 같이 이만 보 삼만 보를 걸을 생각으로 움직였다. 여행에 조금 지쳐갈 때 즈음, 차를 렌트해 둔 날이 되었고, 이전까지와는 전혀 방식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바로 무계획여행. 차가 생기니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 근데 하필 렌트한 날 아쉽게도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차가 있으니 두려울 게 없지. 짝꿍은 운전대를 맡았고 나는 바로 날씨 어플을 켰다. 우리가 있는 포르투에서 가까운 도시 중에 비가 오지 않는 도시를 찾아 무작정 그곳으로 떠났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여행은 단순했다. 비가 오지 않는 곳, 그리고 차가 있으니 쉽게 가보기 어려운 곳을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우리만의 모험이 시작되었고, 첫 번째로 들린 도시는 아마란떼였다. 아치형 다리가 있는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풍경을 보고 무작정 찾아간 곳이었다. 흐렸지만 여행자가 별로 없는 도시라 고요해서 좋았다. 정신없이 달려온 여행 일정 중 온전하게 쉼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란떼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날씨 어플을 켜서 지금 당장 비가 오지 않는 도시를 찾아 이동했다.
근처에 기마랑이스나 브라가 등 유명한 도시들이 있었지만, 전부다 오후 내내 비가 예정되어 있어 가지 않기로 했다. 유난히 그날은 어떻게든 비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도에서 조금 옆으로 이동하며 비가 오지 않는 도시를 찾았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라 배가 고팠는데, 밥이 먹고 싶어 아시안 레스토랑을 찾다가 지도에서 초밥 뷔페를 발견해 난생처음 들어보는 도시로 향했다. 그렇게 정해진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는 빌라 헤알.
빌라 헤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식당부터 찾았다.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도시가 아니기에 식당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잠시 느껴졌지만 괜찮았다. 누구보다 능숙하고 맛있게 초밥뷔페를 즐길 준비가 된 우리는 빠르게 결제 후, 뷔페를 구석구석 누볐다. 신선해 보이는 초밥과 롤, 볶음밥과 볶음면 등 아시안 요리들과 즉석 철판구이까지 꽤 다양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다행히도 음식들은 대체로 맛있었다. 그렇게 식당에 있는 현지인들보다 열심히 몇 번이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양껏 가져다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차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포르투갈 여행 중 그 어느 때보다도 이렇게 음식에만 집중했던 순간이 있던가. 순간 포르투갈 여행 중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음식의 힘은 대단했다.
이후 일정도 역시 정해진 것은 없었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어디 유명한 곳에 들러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았다. 우리는 그저 포르투갈에서 가장 배부르게 먹은 식사를 만족스러워하며 발길 닿는 대로 시내를 걸었다. 걷다 보니 우연히 경치 좋은 절벽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만났고, 마을의 작은 공동묘지도 만났다.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이었다. 비를 피해온만큼 날씨가 좋아서인지 그저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심지어 공사장까지도. 행복이 별 건가!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2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빌라 헤알이라는 도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꽤 괜찮은 초밥 뷔페가 있다는 것 외에는. 근데 그게 참 좋다. 투두리스트에서 할 일을 지워가는 것처럼 바쁘게 관광지를 돌아다닌 게 아니라, 별거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낸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마 빌라 헤알보다 유명한 도시에 갔더라면 이런 하루는 없었겠지. 브라가나 기마랑이스를 갔다면 영영 못 돌아올 것처럼 쉼 없이 돌아다니라 바빴겠지.
때로는 목적 없는 여행이 더 진하게 남는 것 같다. 작은 일상도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어떤 편견도 없어서겠지. 오랜만에 아주 순수한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이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글귀가 공감이 되어 함께 공유해 봅니다.
- 여행의 기술 -
목적 없는 방랑은 젊은 날의 기쁨,
젊음과 함께 내 안에서 바래졌네.
그 후로 내가 어딘가로 떠난 건
목표와 의지가 분명할 때뿐이었네.
그러나 오직 목표만을 바라보는 시선은
방랑의 달콤함에 닿지 못하고,
숲과 강, 길 위에 깃들어 놓여 있는
모든 빛나는 것들을 스쳐 지나가게 한다네.
이제 나는 계속해서 방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네.
순간의 순수한 빛이
동경하는 별들 앞에서 바래지지 않도록.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기술일지니.
세계의 흐름으로부터 함께 달아나며,
잠시 쉬어가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먼 곳을 향해 여전히 길 위에 있는 것.
- <방랑을 위한 산책> 중, 헤르멘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