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문자메시지 한통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아 보내던 시절이 그립다. 매일 전화를 거는 친구의 전화번호는 저절로 외워지던 시절이 있었다. 카카오톡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대학교에 다닐 때였다. 좋아하던 민트색 롤리팝에서 핑크색 스마트폰으로 처음 바꾸고, MT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었다. 한 친구가 물었다. "그럼 이제 카카오톡도 되는 거야?" 카카오톡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신기해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가볍게 한 마디씩 툭툭 건네는 게 재밌었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하기가 더 쉬워서 좋았다.
그러나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 우리는 읽음과 안 읽음의 표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까? 그렇기에 문자 한 통을 보낼 때도 소중하게 가득 적어 전송버튼을 신중하게 눌렀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을 기다렸고, 돌아온 답장안에는 역시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두고두고 곱씹어서 읽을만한 예쁜 말들이 종종 있었다.
변한 것은 카카오톡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한 메시지, 그리고 회사에서 쓰는 사내메신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더이상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 앞에 직접 서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한 문장 가볍게 쓰고 엔터만 치면 되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너무나 간단해졌다. 쉽게 전송된 메시지는 너무나도 쉽게 취소도 가능해졌다. 마음을 꺼내보여 주고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주워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름을 부르고 상대방의 대답이 오면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답이 오지 않으면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거나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 봤다는 핑계로 포장하며 가볍게 메시지를 날리기도 한다. 그렇게 보낸 메시지에는 답장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곤 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표현방식으로 이제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지내?'라는 짧은 말로 툭툭 던지곤 한다. 그 짧은 메시지에는 "그동안 잘 지내는지 궁금했어. 우리 만나자"라는 뜻이 담겨있지만, 그런 마음까지 전달이 되는지는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 답장이 와도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립고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가끔씩 문자를 보내던 그 시절처럼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곤 한다. 그럼 내 마음을 용케 알아채는 그들은 똑같이 마음을 꾹꾹 담아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응원해 주는 말들이 담긴 답장을 보내주곤 한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가 사는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이제 그 수단들이 없으면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지만, 가끔은 이제는 아무도 보내지 않을 문자메시지를 기다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