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으로 피어나는 사람들을 보며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맨발의 땅? 맨발의 길?
덥지 않고 따뜻한 가을의 산책길에서
나는 그 맨발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이 맨발로 어느 구역의 흙을 밟으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땅 위에 길이 나 있다.
오돌토돌 거친 흙바닥 사이로
딱 사람의 골반에 맞는 너비만큼
반질반질한 길이 다져져 있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길만 아무런 잡초도, 도토리나 솔방울은커녕
굵은 돌멩이 하나 없이 반들거린다.
그 길 위로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
혹은 텅 빈 표정이 흐른다.
사람들은 그 맨발의 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땅을 더 빚어내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도, 다음 사람들을 위해.
다음 사람들의 깊은 성찰 혹은 텅 빈 자유를 위해.
무슨 생각을 하며 걷는 걸까.
아니 오히려 하루 중
자기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이려나.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위 행복 건강 사랑에 대한 꼬리를 물며 깊어지는 생각의 시간일지도, 나와 내가 속한 곳의 사람들의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지도,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이의 고유함으로 피어남에 대해 궁리하는지도 모르지.
그러한 사색과 성찰이
자신을 더 자신으로써 피어나게 함을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걷고 걷는다.
그리고 그 고유함으로 피어남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 되었다.
안전하고 윤기 나고 가치 있는 땅이.
마치 어릴 적 흙색의 찰흙을
열심히 두드려 빚어 놓은 것 같은
그 표면에 손을 대면 따스함마저 느껴질 것 같았다.
고유함으로 피어남의 진정한 의미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보드랍고 단단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의도하였건 아니건, 배려, 안전함, 따스함이라는 가치로 빚어진 저 맨발의 땅처럼.
나로서 피어나는 것, 나로 피어남에 집중하는 것은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값지고 유익한 것을 제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의외로 정말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바라는 미래와 삶에 대해
눈에 그려질 만큼 자세히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정말 의외로...
나도 그리 생생하게는 그려 보지 않았다는 것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게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느낌, 촉감, 감정, 위치, 모양새, 향기,
사랑하는 이들의 반응, 그때의 내 기분 등등등
단 한 번도 아주 생생히 상상해 보지 않았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상상하고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계속 그리고 상상하고 느낀다.
처음엔 두루뭉술하던 것에서
색과 형태와 감정이 살아나는 것을
조금씩 느끼는 요즘.
어쩌면 그래서 저들의 사색이 참 아름다웠고,
저들이 부드럽게 밟아 놓은 그 따뜻한 맨발의 길이
괜히 반가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