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덮어 두었던 인문고전을 “뇌에 불을 켜고” 다시 읽기로 했다. 나만의 [고전 읽고 인생에 써먹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2000여 년이란 시간을 견딘 <손자병법>.
손자는 전쟁은 안 하는 게 제일 좋지만, 하면 이겨야 한다며 그 세부 방법에 대한 것을 이 책에 담았다.
그런데 손자병법을 읽으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동안의 학교와 직장 등 사회에서의 교육은 손자병법으로 치면, 장수가 아닌 말 잘 듣는 병사가 되는 교육법에 다름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병사들을 통제하고 잘 활용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장수/우두머리를 위한 병법, 전쟁론의 고전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병사들은 잘만 키우면 궁지에 몰려도 달아나 살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죽도록 싸우게도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소름 돋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어느 병사가 자신을 적군에게 던지는 미끼라고 생각한다면 대열에서 이탈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병사들 개개인이 모두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전쟁에 임한다면 명령에 반응하는 속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손자는 이 점을 경계하였다. 그래서 적지에 진입할 때 군대를 마치 양 떼를 모는 것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용병은 사병들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는, 조직에서 명령에 순종하고 대열에서 흩어짐이 없도록 인재를 키우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을수록 개인이 자기 생각을 더 넓히고 분명히 해야 함을 느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말 잘 듣고 잘 휘둘리는 양 떼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반대로 내가 장수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시 그동안 받은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보면, 병법으로 치면 활을 잘 쏘는 병사, 기동이 뛰어난 병사 등 특정한 무언가를 잘하는 병사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정작 그 병사를 이용하는 장수는 활을 잘 쏜다든지 칼을 잘 쓰는 등 유달리 어느 하나에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 전체적인 정세를 파악하고 계책을 세우며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세를 갖추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능력에 달렸음을 보여준다.
결국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장수가 병법의 원칙을 이해하고 객관적인 여건을 갖추어 "패배할 수 없는 땅"에서 이길 싸움만 한다는 것이 요이다. 나는 '전쟁'의 자리에 '사업' 같은 인생과 관련된 어떤 주제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읽었더니 절로 몰입이 되었다.
병법의 원칙 중 가장 핵심은 바로, 손자병법의 엑기스 "지피지기 지천지기"로, 나를 알고 적을 알며 땅을 알고 하늘을 알아야 한다는 것. 손자병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 한 줄이다. 그중 사람을 아는 것을 중시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방법론이 현대까지, 심지어 서양에서도 주요 필독서로 여겨진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중 용병술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손자가 말하는 뛰어난 용병술은 내게는 마치 내가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내 특기, 강점, 기술, 지식, 지혜, 경험 등)으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비유했다.
뛰어난 용병술은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받침돌을 빼는 것과 같아서 적재적소를 노려서 힘들이지 않고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이는 <80/20 법칙(리처드 코치)>의 중심 메시지와도 의미를 같이 한다고 느꼈다. 어떻게 힘을 줄 것인가를 위해 애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힘들이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인가를 더 깊이 연구해야 함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또한 약점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기>에서 약점이 많은 유방이 비범한 항우를 이긴 이야기와 그 해설이 인상 깊었다. 유방 본인이 생각하기에 약점이 많지만(잘하는 한 가지가 없다) 자신의 장기(여러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을 이끌기, 냉철한 인재 등용)로써 인재를 잘 활용하여 항우를 이겼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약점을 잘 파악하여 활용한 유방과 달리 자신의 약점을 무시하고 혼자 다 하려고 하다 항우는 패배한 것이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 투성이인 전쟁에 있어 또 중요한 것은 적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정공법과 누구도 생각 못 한 전례 없는 "기이한 계책"이다. 그 기이한 계책을 무궁무진하게 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 부분에서 전쟁과 사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또한 손자는 전쟁을 급하게 시작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군사를 출동시킬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시각의 확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꼭 유념하고 싶은 부분이다.
손자병법을 단 한 글자로 요약하라고 하면 '지知'라고 감히 짚어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知'란 지형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전쟁의 지형과 상황, 주변 제후국의 정황과 적장의 심리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다. 즉 전장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알아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군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노자도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자는 명철하다"라고 하였다.
'지知'.
내가 고전을 억척같이 읽어야 할 이유를 손자병법에서 찾았다. 고전을 읽고 이해하여 삶에 적용하는 일은, 훌륭한 병사가 되기 위함이 아닌 그들을 잘 활용하고 세상 정세를 알아 불확실한 인생에서 이기는 장수가 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에 더 힘쓰고 무엇에 힘을 낭비하지 말지에 대한 실루엣을 본 것 같다.
이로써 인문고전을 실용적으로 써먹고자 하는 마음을 한층 더 뜨겁게 달궈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