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나 은에 열을 가하면 쉽게 구부러진다. 이 '열풀림'을 해야 원하는 모양대로 쉽게 형태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열이 풀린 상태 그대로 두면 금속이 쉽게 찌그러지기도 해, 형태를 잡은 후에는 다시 금속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꼭 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금속에 힘을 가하는 것이다. 다시 단단해지게 하기 위해 기구나 기계를 이용하여 금속을 꾹꾹 눌러야 형태가 고정이 되어 주얼리가 단단하게 유지가 되는 것이다.
“희선 씨 진짜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최근 부쩍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다른 이를 통해 들으니 내심 기뻤다. 더 이상 남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이런 말들은 저축하듯 쟁여 놓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과 1년 전까지의 내 모습은 어딘가 불만족스럽고, 왜인지 모르게 불안했던 것 같다.
‘이건 아니다’가 너무 명확해져 퇴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무렵, 내게 확고한 다음 그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두려운 결정의 순간에도 이상한 확신이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든 되겠지 뭐’와 ‘나는 어떻게든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 사이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단단해져야지’ 하는 진한 노력이 어느 순간부터 옅어졌다.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가, 타인의 한 마디로 '그런가?' 하며 씩 웃게 된 오늘,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그동안의 나. 가장 큰 요인은 나를 알아가는 일체의 과정 덕분인 듯하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모든 과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편안하게 머무른다.
대신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날은 심각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 마저 관대하게 바라보려 노력 중이다. 스스로를 그렇게 여길 때에 비로소 남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의도적으로 리추얼을 만들고 있는데, 바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다. 읽는 것에의 만족을 넘어 거기서 인생에 대입할 것을 꼭 찾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읽으니 새벽 책 읽기가 그처럼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유익한 점은 바로 '하루 자신감'이 쌓여가는 느낌. 일찍 일어나 책에서 거침없이 얻어내기로 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것은 하루 동안 꽤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결국, 어느 친구의 말처럼 ‘쥐뿔도 없어도’ 나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 단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타인이 부정적인 말로 나를 끌어내리려 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 하고 개의치 않는다. 그 에너지로 내가 더 중요하다 여기는 것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거 정말, 나 스스로가 대견해질 만큼 엄청난 발전이다. 나처럼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도, 된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검열하는 목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새벽 기상을 해보니 그저 '몇 시에 일어나야지' 하는 목표로 한 새벽 기상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새벽 기상을 통해 정확히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지치지 않는다. 내가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삶을 행복하게 사는데 유용한 삶의 지혜다. 그 아래 카테고리가 다양하게 뻗어나가 시기별로 주제를 달리할 뿐이다. 이 리추얼 역시 앞으로 더 단단해지는데 한몫하리라.
책 <홀로서기 심리학(라라 E. 필딩)>이란 책에 의하면, 단단해지기는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맞지만, 더 이상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부족함에 대해 묵과한다는 태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서 이유모를 답답함이 해소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단단한 사람만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일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단단해지기는 과정이며,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이라 믿는다. '열풀림' 한 은에 망치질이나 광쇠질로 압력을 가하는 등 일정 과정을 거쳐야 함부로 찌그러지지 않는 단단한 금속이 될 수 있듯이.
단단해서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한 과정 속에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또한 수없이 흔들려 본 사람만이 단단해질 수 있다. 다시 흔들린다 해도 단단해 보았던 감각의 기억으로 금방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왜 이렇게 잘 흔들릴까' 하는 이들도 이제 그 자각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이러는 나도 진짜 단단한 사람들 앞에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일이겠지만, 그게 뭔 의미가 있겠나.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단단해지는 내가 되면 그만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오랜 벗이 미소 지으며 말할지도 모른다.
"OO 씨, 진짜 많이 단단해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