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디지털 피로감?
요즘 오전엔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를 확인한다. 내가 올린 사진과 글에 누가 하트를 눌렀나, 조회수는 얼마인가를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오늘은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 지겨워지더라. 그리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수많은 글과 사진에 피로해지는 날. 그런 날도 있지 하면서도 '이깟 게 다 뭐람-' 하는 날.
슬럼프... 같은 건가?
그런 내게 오늘은 어쩌면 '디지털 다이어트'가 필요한 건 아닐까. 디지털 세상에서 볼 것, 읽을 것은 끝도 없다. 심지어 그것들은 유용하기까지 하다. 하면 좋은 것,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사야 하는 것, 살 때 주의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 저게 요물이더라, 이거 엄청 웃기더라, 이런 일도 있다더라, 그 사람이 그랬다더라... 하면서 제안하는 것들이 때로는 소화가 안 되어 꾸륵거린다. 그럼 나는 어땠나. 나 또한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쓰임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게시물을 올렸었지. 내가 좋았던 것에 대한 글과 사진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겠구나 싶은 오늘.
이런 디지털 활동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날은 잠시 휴대폰, 노트북과 멀어질 필요가 있다. 그럼 디지털 피로감이 확 몰려오는 그런 날은 뭘 하면 좋을까?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본다.
1. 서점에 책 사러 가기, 책 구경도 하기
2. 일기장에 일기 쓰기, 아무 생각 나열하기
3. 차, 커피 마시며 소설 읽기
4. 식물 물 주기, 분갈이, 가지치기, 식물멍
5. 좋아하는 물건 관리해주기(세척 등등)
6. 반신욕
7. 안 쓰는 물건 버리기, 정리하기
8. 요가, 스트레칭, 운동
9. 공원 뛰기
10. 어디로든 나가기
...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지겨운 그런 날, '이게 뭔 의미가 있겠어' 하는... 그런 날 해볼 만한 자기만의 아날로그 리스트를 가져 보면 좋을 것 같다. 그걸 하루에 다 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뽑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적립해두는 것이다. 이런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는 것도 누군가에게 디지털 피로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기 리스트를 만들어 보며 그런 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며 보는 것이다. 다 꺼놓고 그저 디지털 다이어트의 날이라 정하고, 푹 쉬는 거다. 하루쯤은 디지털 세상이 보여주는 온갖 흥미롭고 피곤한 정보들로부터 벗어나 보는 것이다.
휴대폰, 노트북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적어 두면, 언제든지 그런 날이 와도 호기롭게 '좋다, 오늘 문 닫자'하고 셔터 내리고 즐길 수 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건 덤이다. '슬럼프가 온 건가' 할 게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 다이어트까진 아니어도 디지털 스트레칭을 해본달까.
나는 솔직히 디지털 세상이 주는 유익함에 다이어트는 무리일 듯싶다. 대신 디지털 피로가 올 때 하루 문(화면) 닫고 디지털 스트레칭을 한다면, 다시 다음 날은 더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디지털 세계로부터 내 삶에 유용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디지털 피로감을 슬럼프나 회의감으로 착각하지 않고, 디지털 스트레칭을 해보기.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아날로그 리스트는 더 늘어날 것이고 그 자체가 리추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오늘의 나에게 제안하는 글이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이런 날은 '디지털 스트레칭' 리추얼을 가져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