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리추얼
퇴사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당장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자연히 커졌다. 내게 그 아름다운 것들이란 식물이다.
식물 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건, 2년 전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온 즈음부터다. 식물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때부터 식물은 내가 리추얼이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한 일상이 되어 왔다. 칠렐레 팔렐레 머리가 길면 잘라주고, 몸이 커지면 더 큰 옷을 입혀주며, 나도 어느덧 웬만해선 식물을 죽이지 않는 식집사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1년이 걸렸고 그새 많은 화분들이 정리되었다. 지금 우리 집엔 아무것도 모르는 식집사의 손에서 고생고생 버티어온 기특한 식물들로 가득하다. 사실은 우리 집에서 키우면 죽을 것 같은 식물은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왜 그렇게 화분이 많은지 궁금했는데, 내가 이제 그때 친구 어머님의 나이에 가까워져서일까. 식물 하나하나가 다 다른 이유로 좋다. 고사리는 그 여리여리함이 좋고 싱고니움은 외유내강해서 좋고 비파나무는 묵묵해서 좋으며 아스파라거스메이리는 찬란해서 좋고... 끝도 없는 것이다. 우리 집 식물들을 자랑하려면 따로 글을 올려야 할 정도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다. 남편의 눈에는 다 비스름한 초록 풀 일뿐이고, 아마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럴 거라는 것도 잘 안다.
식물의 세계는 또 어마 무시한데, 상품으로써의 식물의 운명은 아주 다양하더라. 아예 관심을 못 받거나 지나치게 마니아를 모으거나, 인테리어 소품이 되거나 개업선물이 되거나 등등. 출신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정글에 온 식물부터 아프리카에서 온 식물까지. 그곳에서는 흔한 풀떼기였을지 몰라도 비행기 타고 오면 순식간에 희귀 식물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식물을 담는 화분 중 흙으로 빚은 토분이 있는데, 토분 역시 또 다른 세상이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브랜드가 있는 토분은 '토분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며 구하기조차 어렵다. 구매권 또는 매장 방문권 같은 걸 소지해야 판매 공지가 뜰 때 줄이라도 서볼 수 있으나 그 구매권(방문권)을 따는 일 또한 복잡하여 결국 알아보다 두 손들었다. 나는 마니아가 되긴 글렀다. 꼭 그 직전까지만 가보는 '세미' 마니아라 해두자.
그렇게 세미 마니아 식집사로 살고 있지만,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은 마니아 못지않다. 우리 집 묵묵한 캐릭터 비파나무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1년간 주중에는 내가 다른 지역에 있어 돌보질 못했다. 주말에 잎을 아래로 늘어뜨리면 가끔 물을 주고, 딱 한 번 분갈이를 해준 것 외엔 해준 것이 없는데 알아서 큰 것이다. 우리 아들만큼이나 기특할 수밖에 없다. 이 녀석의 이파리는 꽤 쓸모까지 있다. 수육을 삶을 때 월계수 잎 대신 사용하면 잡내를 잡아주는 것! 몇 잎 없는 게 우리 집 비파의 매력이라 말려서 차를 만들 생각까진 안 한다.
그런 비파나무를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겼더니 봄인 줄 착각하여 이틀 만에 새순을 올리는 걸 보고 얼마나 기특하고 기쁜 마음이 들던지 사진을 매일 찍고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자리를 옮기며 키워내는 것 아닐까. 멀건 연둣빛 새순에는 뽀얗고 복슬복슬한 솜털을 잔뜩 달고 있는데, 햇볕을 맞으며 반짝거리는 그 모습이 아름다워 '식물멍' 하는 순간은 곧, 초록이 주는 사랑이다.
아이가 등원하면 식물들의 상태를 살펴본다. 각 잡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물 줄 때가 된 아이들에게 직감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물이 고플 때가 되면, 요 녀석들도 자세부터가 다르다. 축 처져 있는 모습이 보이면 그때가 바로 물을 줄 때다. 그리고 환기를 하여 바람을 쐬어 주고, 가끔은 화분 위치를 옮기기도 한다. 특히 물기와 햇볕을 머금은 식물을 보는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행복의 순간이다.
식물을 돌보는 리추얼의 가장 큰 혜택은, 그냥 거기 살아있음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다 세월이 쌓이며 오래 함께 한 식물에는 더 큰 애정이 피어난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소품에 불과한 식물들도 점점 생명력을 뽐낸다. 나 여기 살아 있어요. 지금 기분 좋아요, 하며 계절마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과 함께 커가는 모든 것은 생생하게 아름답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것들을 더 품으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봄이 오는지 (식)물욕이 강해지는 것에 대한 변명이랄까.
반면 아픈 손가락도 있는데 바로 우리 집 무화과나무다. 딱 일 년 전, 한 그루는 열매가 달린 것으로, 다른 한 그루는 잎 없는 묘목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달린 열매는 다 썩어 떨어졌고, 묘목은 이파리만 무성히 내놓으며 힘겹게 2021년을 보내다 둘 다 베란다에서 동면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새순이 많이 달렸다. 무려 추운 베란다에서. 참 기특하여라.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무화과를 보며, 식물이 소품이 아닌 생명을 지닌 개체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나 여기 깨어나고 있어요. 올해는 무화과 열매를 무사히 맺을 수 있으려나. 괜찮아. 너도 비파나무처럼 열매를 맺지 못해도.(사 먹지 뭐.) 넌 우리 집 식물들의 희망이다.
되고 싶은 것은 없는데, 하고 싶은 건 참 많다.
식물을 잘 키우는 것도 그중 하나.
잘 살아보자, 식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