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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an 08. 2022

디지털 드로잉을 하며 바뀐 7가지

'매일 하나씩 그리기' 리추얼

요즘 나는 매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디지털 드로잉'에 관심이 생겨 아이패드와 애플펜슬도 구매했다. 드로잉 책을 보며 따라 그리는 수준에 불과한 나의 가장 최신 리추얼이다. 매일 작은 그림 하나를 완성해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린다. 난 완성 후 잊지 않고 동생에게 카톡으로 전송한다. 구독자는 원하지도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이 갖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고, 제일 큰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디지털 드로잉. 아주 초보 수준인 내 주제에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지만, 드로잉을 계속하며 바뀐 것들에 대해 기록을 남겨 본다.




1. 나를 잊는 경험


그림을 그리며, 특히 디지털 드로잉 특성상 앱의 자잘한 기능들을 따라가며 그림을 완성해 가는데, 그 과정에 몰두하다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다. 그건 일종의 해방감 같은 걸 주며 약간의 중독성도 있다. 작은 일러스트조차 이럴진대, 아마 진정한 예술가들은 이걸 넘어서는 수준의 새로운 세계에 당도하지 않을까. 그들이 경험하는 황홀감 수준의 백분의 일이라도 경험해 본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낀다.



2. 시작이 두렵지 않아


뭔가를 시작해 보니, 막상 시작하는 게 두렵지 않다. 사실 이건 드로잉뿐만은 아니다. 온라인 세계에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누군가 읽는다는 것도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으니. 디지털 드로잉을 유튜브로 배우며 차근차근 따라 해 보니, 요즘엔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장벽도 낮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만 먹으면 시작은 할 수 있다는 것. 시작하기 전의 수많은 복잡한 생각들, 이를테면 '아이패드랑 애플펜슬까지 샀는데, 하다 마는 거 아니야? 알고 보니 나 정말 못 그리면 어떡하지? 이거 해서 어디다 쓰지 근데?' 같은 것들이 막상 해보면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시작하면 일단 뭐라도 하게 되니까.


아무도 나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도 새로운 수확이다. 한때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조금 내려놓았달까. 불완전해 더 자유로운 것이고 계속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젠 뭘 시작하는 것에 대해 크게 두렵지가 않다.



3. 아, 나 이런 사람이구나


내가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리지 않으면 시작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만의 스케치북에 몇 번 끄적이다 말진 않았을까. 조회 수가 2, 3이라도 누군가 보긴 본다. 그것에 묘한 짜릿함을 느낀다. 아, 나도 '관종끼'가 있구나, 나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이건 글 쓰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일기장을 채울 때와는 크게 다르다. 그건 내게 묘한 추진력을 주기도 하는데, 보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그런 사람이다. 쓰고 보니 나란 사람 웃기다. 뭐 어때, '관종끼'가 밥 먹여 주는 세상이라는데.



4. 창작의 욕구


창작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데,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창작의 욕구가 채워진다. 그건 살면서 느끼는 가장 우아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허접하고 우스워도 내 것을 만든다는 그 감각에, 나는 매일 개인적인 평화를 느낀다. 아무도 카피하지 않을 그림 밑에 '©'를 찍으며 혼자 즐거워한다.


대인관계에서 얻는 즐거움과 달리 창작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만족감을 준다. (중략) 창작의 욕망을 억지로 누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공허감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런 정체성 위기는 자기 인생의 의미, 자신이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지금 내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라는 감각이 필요하다.

<책 한번 써봅시다(장강명 저)> 중



5. '아무 그림'은 없구나


주변의 모든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아이 책에 있는 작은 캐릭터도, 커피 홀더의 그림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출처 없는 작은 이미지들도, 그 흔한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시간과 감각에 의해 공들여진 창작물이구나. 어느 것 하나 '아무 그림'은 없다는 것.


이걸 잘해 돈을 잘 버는 이들에게 자연히 관심도 생긴다. 왜 어떤 이들은 더 멋진 그림을 그리는데 사람들을 사로잡지는 못할까? 내 '개똥' 찬 결론은 '맥락의 부재'다. 일종의 스토리가 없는 그림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무엇을 하든 그 속에 작은 철학과 역사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이목을 끌 수 없다. 단지 자기만의 만족에 그친다. 이렇게 관련 관심사도 늘어난다.



6. 이게 어디에 쓸모 있지?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그거 어따써?"

나는 괜히 얼렁뚱땅 "다 쓸모가 있어!"라고 말해 버렸지만, 사실 별생각은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시작한 것.


하지만 그림에 몰두하다가 문득문득 나조차 묻는다. '근데 이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한 번씩 고개를 든다. 쓸모에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쓸모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고 해야 할 이유가 못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쓸모 있어야 했던, 부품으로 살아온 나 자신에게 작은 연민이 생긴다. 돈을 벌지 않거나 어떤 쓸모가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면 사람도 쓸모없나? 그렇다고 가치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괜히 주먹을 꽉 쥐어 본다. 나 이제 부품으로 살지 않겠어, 땅땅.


어쨌든, 이건 아직 미완의 생각.

시간이 지나 보면 알지 않을까. 쓸모없는 것의 힘을.



1~6까지 다 공감가지 않는다면, 7은 공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7. 그냥 재미있다. 그 재미있는 걸 매일 하는 나를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재미있으니 이렇게 리추얼이 되었다. 이 리추얼이 또 다른 리추얼을 끌고 올 것 같은 예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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