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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Dec 31. 2021

'나의 생각'을 쌓아가는 리추얼

매일 글을 쓰는 이유


바쁜 맞벌이 부모 아래서 교육적으로 대단한 서포트를 받지는 못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주변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애'로 알아주었고 상도 많이 받았다. 그 덕분에 미술학원만큼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학원을 끊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집 형편에 큰 교육적 투자였고 감사했다. 영어든, 수학이든,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물어, 엄마에게 부탁해 돈만 받아 직접 등록해 다녔다.


그런 집에 책이 많지 않은 건 당연한 건가, 우리 집이 이상한 건가. 아무튼, 무슨 동화 전집과 자연관찰 전집 이외는 책이 없었다. 책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고, '책 읽으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푹 빠진 시리즈가 있었는데, 그게 '해리포터'다. 마법의 세계에 푹 빠진 나는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시리즈를 탐독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다른 세상을 그때 처음 접하고 책의 재미를 알아갔다. 사실 그때까지도 책이 재밌다기보다 ‘해리포터’가 재밌던 게 더 크지만. 어른이 된 후 '해리포터'를 만든 조앤 K. 롤링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팬이 다가와 "You are my youth."라고 했다는 그녀의 말에 순간 나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20대에는 혼자 몰래 자주 울었다. 흔한 이유들로. 책을 읽으며 끊어질듯한 외줄 위에서 조금씩 균형을 잡아갔다. 어렸을 때 읽은 해리포터의 호그와트와 달리 현실적인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이 책에 있었다. 때로는 책 속에 재미와 감동이 있었고, 때로는 책이 잘 살고자 하는 의욕을 키워 주었다.


그때는 특히 '긍정'을 말하는 책이 넘쳤는데, 솔직히 도움 되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비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도 그 당시 내게는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때 책 속 세상 사람들이 보여준 간접 경험과 태도와 생각의 합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책을 읽는 게 그저 습관이 되었고, 안 읽으면 점점 땅속 깊이 파묻히는 기분까지 들었다. 책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책 속의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흡수하고, 또 다른 책 속의 세상을 접하고의 반복. 책 속 이야기를 소비만 하는 일상의 연속이고, 아주 가끔은 그것조차 벅찼다. 간접적으로 내 삶을 바꿔줬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은 "내 생각이라는 게 나에게 있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책이든, 미디어든, 많이 접하고 받아들인다고 다가 아니다. 그들의 메시지에 더해 내 생각이란 게 독자적으로 자라나지 못한다면, 내가 원하는 주체적인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매거진 제목처럼 단단하고, 오리지널 한 나를 만나고 싶다. '대단한 글은 못 되더라도, 무조건 매일 쓰면서 내 생각을 쌓아가자'라고 마음먹었다.


글을 쓰니 내 안의 처음 보는 두려움이 생기고, 읽는 이들의 눈치를 보는 나를 보게 된다. 오히려 남의 글은 비판적으로 읽지도 않으면서, 자기 검열만 더 하는 아이러니라니. 그러나 이것도 과정이겠거니 한다. 우습지만 이런 내 두려움에 대한 소심한 방어는 '댓글 제한'이다. 정말이지, 끝까지 마쳐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렇게 '일단 완성'이 나의 작은 목표이다. 그 후에는 조금이나마 더 단단해진 내가 누군가의 비판도 건설적으로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을 하나씩 깨면서 단단해지려고 난 매일 글을 쓴다. 브런치, 블로그, 트위터에 일기가 아닌 글을 쓰려고 노력해 본다. 나와의 약속이면서 매일의 리추얼이다. 쓰면서 조금씩 내 생각과 감정이 정제됨을 느낀다. 없던 생각이 튀어나오고, 그게 다시 내 생각이 되기도 하면서.


그저 이 작은 목표를 두고 하나씩 깨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책 속의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든, 감동이 되든, 돈이 되든, 정보가 되든, 가치가 있는 무엇을 전달하는 글을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으로.


그리고 작가 이슬아의 말을 믿으므로.


“사실 나는 글쓰기만큼 재능의 영향을 덜 받은 분야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반복하면 거의 무조건 나아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꾸준하지 않으면 재능도 소용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중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 되는 내 글쓰기 리추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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