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만 한다면, 나는 '모닝 요가'
어김없이 돌아온 아이의 유치원 방학. 그 말인즉슨, 지켜온 내 루틴이 깨지는 시간이라는 것. 어떤 형태든 오전엔 input, 오후엔 output을 지켜온 내 일상과 그걸 가능하게 했던 리추얼들과도 잠시 멀어지는 기간이라는 것. 어쩔 수 없다.
오늘 아침 책을 읽고 있었다. 잠에서 깬 아들이 거실로 나오며 우는소리로 "엄마 이러지 마"라고 하길래, "응? 뭐라고? 뭘?" 하니 "엄마 일하지 마 일하지 마" 하는 것이다. 재택근무할 때 온종일 자리에 앉아 일만 하고 자기와 놀아 주지 않았던 게 싫었지만 참았다고. 아들은 신나게 15분 정도 놀아주면 그다음 15분 정도 혼자 신나게 노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아이의 방학은 나의 집중 육아 기간이다. 이 기간, 나는 이상하게 자주 배가 고프다.
'밥 다 먹고, 잠깐 TV 보여 주고, 커피 마시며 책 읽어야겠다'
밥을 먹으며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랑아, 너는 저렇게 장난감이 많지? 엄마는 책 읽는 게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야. 그래서 책 읽을 때가 제일 좋은데. 근데 너는 뭐하고 놀 때 제일 좋아?”
"나는... 엄마랑 노는 거! 엄마랑 뽀뽀 놀이하는 거!"
순간 아차 싶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으려 퇴사한 후, 하루의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다시 왜 난 그 마음을 잊어버릴까.
루틴이든, 습관이든, 리추얼이든, 어쩌면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 아들이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좋다고 할 때, 조금 부끄러웠고 미안하고 고마웠으며 띵했다.
리추얼에 집착하는 순간, 더 이상 리추얼의 의미를 잃는 것이 아닐까. 리추얼도 결국 사랑, 행복, 건강이라는 가치보다 앞설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의미를 두는 어떤 행위도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미뤄둘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는 내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리추얼은 모닝 요가다. 그것만큼은 아이 방학 기간에도 꾸준히 할 수 있다.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딱 30분만 먼저 일어나면 된다. 20~30분짜리 요가 영상을 따라 모닝 요가하는 시간이 내가 아침을 맞이하는 신성한 의식, 리추얼이다.
대학생 때만 해도 요가 영상을 구매해서 봐야 했는데, 이젠 일반인들이 올린 훌륭한 요가 영상을 언제든 볼 수 있다. 약간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가장 가성비 높은 리추얼일 것이다. 난 주말에는 모닝 요가 리추얼을 쉬고, 푹 잔다. 그게 내가 모닝 요가 리추얼을 더 오래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확실히 모닝 요가를 하지 않는 주말과 비교하면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차이가 크다.
자는 동안 굳은 몸을 풀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다. 대단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약간 일찍 일어나 내 몸을 위한 시간을 가진 것에서 작은 성취감을 얻는 게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한달까. 스스로 '나는 이 정도는 하는 사람이야'하는 은근한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게 아마 리추얼의 힘이겠지?
이런 나도, 육아를 하다 보면 이마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리추얼을 행하지 못한 그날 하루에, 나 자신에게 화내지 말기. 리추얼에 집착하는 순간, 더 이상 리추얼이 아니다. '뭣이 더 중헌 지' 혼동하지 않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