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정성스러운 한 접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점심은 무조건 배달음식이었다. 코로나로 식당에 나가기 어려워 사무실에서 일하다 밥이 오면 전화를 받고 뛰어 내려가 양손 가득 도시락을 받아 왔다. 매일 다양한 메뉴를 시켰지만, 늘 내게는 '까만 플라스틱에 담긴 먹을 것'일뿐이었다. 최대한 빨리 밥을 먹고 각자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점심은 단지 다 같이 최대한 빨리 먹고 쉬어야 할 일일 뿐이었다.
이제 퇴사를 했으니 점심을 언제 먹을지도 내 맘대로 정한다. 그런데 직접 해 먹어야 하니 처음엔 참 어색했다. 얼린 밥을 녹여 있는 반찬으로 대충 때우다가 '잠깐, 이러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먹어도 되는데,
왜 난 또 해야 할 일처럼 점심을 해결하고 있지?'
이렇게 먹는 밥이 '까만 플라스틱에 담긴 먹을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싶어 냉장고를 뒤졌다. 다행히 나름 먹을 게 많았다. 집에 눅눅해져 가는 바게트가 있어 급히 '마늘빵 만들기'를 검색했고, 따라 했더니 정확히 10분 걸렸다. 그렇게 마늘빵과 딸기, 호두, 내가 만든 귤잼을 한 접시에 담았다.
'사진을 좀 찍어볼까?'
이상하게 내가 찍으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안 예쁘게 나온다. 최소 사진에 담았을 때 깔끔하게 나오도록만 담아보자며, 몇 번 찍다 보니 인스타 감성이 나온다. ‘10분의 정성 대비 훌륭한 듯?’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준비한 한 접시를 창 밖을 보며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책 <그냥 하지 말자>를 읽던 중 해시태그로 표현되는 '예쁜 일상, 예쁜 삶'에 대한 욕구가 늘었다는 부분을 읽었는데, '맞아요, 딱 제 얘기네요'하는 내 마음의 소리에 혼자 피식했다. 이렇게 나도, 예쁜 삶을 위한 '작지만 정성스러운 한 접시' 리추얼을 작은 이벤트로 삼아 본다. 혼자만의 점심 한 접시를 예쁘게 담으니, 내 일상도 조금씩 예뻐지고 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도 든다. 그리고 의외로 쉽다! 반복되는 시간 속, 딱 그 한 접시만큼만 일지라도 잠깐의 예쁜 일상이 힘을 줄 때도 있고, 때때로 작은 성취감까지 준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일 가까운 건 나니까.
매일은 힘들어도 이틀에 한 번은 작지만 예쁘게 차려 먹는다.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격일제 리추얼이면 어때.
나의 요즘 일상은 input을 위한 오전 시간과 output을 위한 오후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 아주 잠깐만 시간을 내어 감성 한 스푼을 더해 본다.
나를 위한 간단하지만 정성스러운 한 접시로.